자상·냉혹 … 두 얼굴의 사나이 라울 카스트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형 피델<左>과 이야기 나누는 라울.

라울 카스트로는 ‘두 얼굴의 사나이’로 알려져 있다. ‘자상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으로 군 부하들을 가족처럼 살갑게 대하는 모습 뒤에는 무자비하고 냉혹한 면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피델이 1997년 라울을 후계자로 지목하며 “내 뒤에는 나보다 더 과격한 사람이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혁명 직후 라울이 반혁명 인사 숙청을 맡았을 때 일이다. 너무 많이 처형하는 바람에 피델이 “총살을 중단하라”고 지시하자 대신에 교수형을 집행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89년엔 군 장성들이 마약거래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지자 라울이 앞장서 사형을 주장하기도 했다.

산티아고와 아바나에서 학교를 다닐 때 피델이 뛰어난 성적을 올린 반면 라울은 성적이 중간 정도에 머문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 사회과학을 전공하면서 먼저 사회주의에 심취해 피델에게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 쿠바 정권의 탄압을 피해 멕시코로 도피했던 시절, 라울은 후에 혁명동지가 된 체 게바라를 사귄 뒤 피델에게 소개했다. 당시 소련 정보원과 접촉해 혁명의 배후 지원을 받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카스트로 형제는 56년 쿠바로 잠입해 게릴라전을 펼친 끝에 59년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았다.

91년 소련이 붕괴하자 라울은 쿠바 군대를 산업 역군으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농장에서 일을 하도록 하는가 하면, 국내 휴양지 개발에 동원했다. 군 병력 중 엘리트들은 따로 뽑아 유럽에서 경영을 배워 오도록 했다. 그의 실용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59년 혁명이 성공한 직후 라울은 미국 MIT에서 화학을 공부하던 혁명동지 빌마 에스핀 기요이스와 결혼했다. 기요이스는 60년 여성동맹 위원장에 취임한 뒤 지난해 6월 사망할 때까지 권력 핵심부에서 활약했다.

피델의 건강이 악화되기까지 라울은 철저히 형의 그늘에서 지냈다. 그러나 49년간 군을 완전하게 장악해 쿠바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기반을 구축했다. 쿠바에서 자란 새뮤얼 파버 미국 브루클린대 교수는 “라울은 피델보다 더 조직적이고 실행력이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아바나=남정호 특파원, 정재홍 기자



라울 카스트로

▶1931년 쿠바에서 부잣집의 칠 남매 중 넷째(삼 형제 중 막내)

▶대학서 쿠바 공산당 청년조직 가입

▶53년 바티스타 정권 타도 위해 형과 군부대 공격했다 실패, 22개월 복역

▶55년 사면 뒤 멕시코 망명. 체 게바라와 교류, 피델에게 소개

▶58~59년 쿠바 귀국 뒤 반군 봉기. 바티스타 정권 축출

▶59년 혁명동지 빌마 에스핀과 결혼

▶59~2008년 국방부 장관

▶2006년 7월 국가평의회 의장 권한대행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