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기업인 정치관여에 춤춘 한국株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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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국 기업인들은 기억력이 좋지 않은 것인가.
과거 정치에 뛰어들거나 정부를 공개 비판했던 기업인들이 고초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선경.쌍용,그리고 삼성그룹 회장등이 잇따라 집권층과 맞부닥쳤다.주식투자자들은 이와관련해 해당그룹 계열사의 주식을 싼값에 처분하는등 민감한 반응 을 보였다.
주식매도가 촉발된 것은 물론 과거 박태준(朴泰俊)前포철회장과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명예회장이 남긴 좋지않은 사례때문이다.두사람은 92년 대통령선거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후보에게 도전장을 냈다가 실패한 후 곤경에 빠진 바 있다 .현대그룹은 얼마전까지 정부통제아래 놓여있는 금융기관들로부터 자금지원을 거부당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거 사례가 재연될 것이란 일부 관측에도 불구하고『기회는 있다』고 말한다.한국에서 그룹총수와 청와대의 관계는 계열사들이 굴러가는데 있어 자금사정 만큼이나 중요하다.
만약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어 놓았다면 어지간한 정 치적 역경은견뎌낼 수 있다.
삼성그룹 이건희(李健熙)회장의 예를 보자.李회장은 지난주 베이징(北京)에서 정부정책을 비판했다.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李회장은『정부는 보다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해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
이같은 보도가 나오자 삼성계열사들의 주식값은 즉각 동요를 보였다.삼성전자의 주가는 1천5백원 떨어진 10만7천5백원을 기록했고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도 각각 6백원과 9백원 하락했다.
그러나 삼성계열사들의 주가는 곧바로 회복세로 돌아서 종합주가지수를 능가하는 강한 상승세를 나타냈다.
지난 18일 한국의 세무당국은 삼성그룹에 대해 부동산투기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한국에서 정부의 세무조사는 기업들이 마음에 들지않는 태도를 보였을때 공공연한 보복수단으로 자주활용된다.
그러나 증시전문가들은 李회장과 金대통령 사이의 강한 유대관계에 비추어 긴장은 쉽게 가라앉을 것이며 삼성계열사들의 주가도 오름세를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장은증권의 주식중개인 리처드 김은『정부는 여전히 삼성그룹에 호감을 갖고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번 일은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경그룹에 관해선 그렇게 낙관적이지 못하다.지난 2월중순 최종현(崔鍾賢)회장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한지 며칠 후세무당국은 유공등 선경그룹의 4개 계열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전문가들은 崔회장이 삼성의 李 회장 만큼 청와대의 신임을 얻고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대우증권의 구자삼부장은『현 정부의 관점에서 崔회장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고 지적한다.2월중순 3만6천원대였던 유공의 주가는 최근 3만4천원대로 밀려있다.
쌍용그룹 김석원(金錫元)회장의 경우는 다소 복잡하다.金회장은이달초 집권 민자당의 대구지역 지구당 조직책에 임명됐다.그는 집권당의 입장에서 6월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구지역 표밭갈이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 고 있다.그러나 최근 쌍용그룹의 주가는 흔들리고 있다.비록 당장은 그룹에 도움이 될수 있지만 만약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이 집권하게 되면 거꾸로 심각한 타격을 받게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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