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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영화산책>아웃브레이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밀고 당기는 스토리에는 항상 선과 악이 있게 마련인데 미국영화는 요즘 그 악의 소재를 「내부의 적」에서 찾고 있는것 같다.소련이 초강국으로 한창 기승을 부리던 냉전시대엔 첩보나 전쟁물을 통해 크렘린을 골탕먹임으로써 미국의 위대함을 고양하더니 근래는 강적이 사라진 때문인지 국가 내부기관의 부정과 비리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개척시대의 청교도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외치고있는 인상이다.최근의 사례로는 교도관의 비리를 파헤친 『쇼생크탈출』을 들수 있는데 CIA를 매도 한 『콘돌』을 비롯하여 정치인.경찰등 힘깨나 쓴다는 공직자들이 월권.부정을 저지르고 법의 심판을 받는 스토리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런 중에도 유독 군인만은 건드리지 않아 못 다룰것 없는 미국영화도 범접하지 못하는 성역이 있나 싶었는데 『아웃브레이크』를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미군 장성 하나를 시민의 공적으로 삼아 철저하게 매질을 가한 것이다.문제의 인물 은 세균 무기의 연구 총책임자로서 군사기밀과 연구목적을 위하여 세균에 오염된 한마을을 몽땅 날려버리는 음모를 꾸민다.태평양전쟁때 만주에서 양민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자행한 일본관동군 731부대의 이시이(石井四郎)사령관같은 잔혹한 인간 상이다.
전염병 창궐이란 뜻의 『아웃브레이크』주인공은 장군이 아니라 그의 음모에 대항하여 외롭게 싸우는 군의관(대령)이다.군의 생명은 확고한 명령체계인데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여 양민을 살리는 그의 독자적 행동은 미국영화에서 보아온 훌륭한 군인상과는 딴판이다.적어도 이런 배역을 맡으려면 강인하고 건장한 이미지를가진 사내여야 할텐데 뜻밖에도 멍청하고 나약해 보이는 더스틴 호프만이 맡아 좀 의외로 느껴진다.그러나 그런 캐스팅도 보통사람이 갖는 위대한 용기를 보여주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맹목적 복종을 강요하는 종래의 군사문화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군인의 명령체계에 의문을 제기한 영화라 하겠다.어떻게 보면 악법(惡法)은 지킬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의식의 변화 바람은 전통적인 군인정신 에까지 불고있는 느낌이다.
편집담당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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