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포 탈출하기 <8> 피동형은 ‘소심한 애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호 23면

일러스트= 강일구

중학교 영어 시간에 능동태 문장을 수동태로 바꾸는 방법을 배우느라 꽤나 고생했다. 능동태의 목적어가 수동태 주어가 되고, 동사는 be 동사+과거분사로 바뀌고…. 반면 국어 시간에 능동태와 수동태를 특별히 공부한 기억은 없다. 우리말은 능동형 중심이어서 문법적으로 그런 구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영어의 be 동사+과거분사 역할을 하는 피동형이 있다.

태안 기름오염 지역에서는 수산물의 생산·출하가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돈의문은 태조 5년인 1396년 도성 서쪽의 대문으로 창건되었으며, 흔히 서대문이라 불린다.
 
위의 예문에서처럼 피동형은 사물이 주어이거나 동작·행위에 초점을 맞춰 쓸 때 유용하다. 주어를 알 수 없거나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고자 할 때도 편리하다. 아래 글은 조심스럽게 표현할 때 피동형을 사용한 경우다.

약점도 없지 않다. 다음 문장을 보자.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의 주역인 수출 유공업체 35곳에 대해 정부 포상이 주어졌다.(→정부가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의 주역인 유공업체 35곳을 포상했다.)
 
피동형(포상이 주어졌다)은 능동형보다 힘이 없어 보이고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능동형은 문장이 짧고 정확하며 누가 무얼 했는지 분명하다. 문장에 자신감이 넘친다.
2007년 여야 합의에 의해 사학법이 재개정됐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정치논리에 의한 임시방편이었을 뿐이다.(→…여야 합의로 사학법을 재개정했다고는 하나…)
 
위의 예문은 ‘~에 의해 ~되다’는 형태로 영어의 수동태 문장을 우리말로 옮겨놓은 듯하다.

“명료함과 활력에서 능동 동사와 수동 동사의 차이는 삶과 죽음의 차이만큼이나 크다(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에서).” “작가들이 수동태를 좋아하는 까닭은 소심한 사람들이 수동적인 애인을 좋아하는 까닭과 마찬가지(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이런 주장을 우리글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가급적 능동형으로 문장에 활기를 불어넣자. 아래 용례는 우리가 자주 쓰는 피동형이다.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해야 한다), 신중한 선택이 요구된다(→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물의가 빚어지다(→물의를 빚다),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신(新)고전=지난 반세기 동안 출간된 책 중 현대사회에 새로운 시대정신이나 문제의식을 제공한 명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산하 ‘좋은 책 선정위원회’가 중앙SUNDAY 독자들에게 매주 한 권의 신(新)고전을 골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