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 퇴진 이후 쿠바는 … 특파원 3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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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말레콘 해안에 늘어선 중국산 버스들의 모습이 쿠바에서 급증하는 ‘차이나 파워’를 상징하는 듯하다. '중국우통(中國宇通)'로고(하얀 선)가 선명하다. [사진=남정호 특파원]

쿠바 수도 아바나의 해안도로 ‘말레콘(Malecon)’은 꽤나 로맨틱하다. 살랑이는 해풍, 탁 트인 바다. 때마침 카리브해에 붉은 석양이라도 지면 이곳이 ‘혁명의 땅’임을 순간 잊게 된다. 특히 유서 깊은 옛 시가지 올드 아바나를 낀 말레콘은 명소다. 늘 최신형 관광버스들이 북적인다.

20일(현지시간) 이곳에 갔다. 줄지어 선 버스들이 보였으나 당연한 일 같아 별 생각 없이 지나치려 했다. 그러다 문득 예상 못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관광버스 뒷면에 ‘중국우통(中國宇通)’이란 은빛 로고가 붙어 있는 것 아닌가. 세어 보니 길가에 주차한 50여 대 중 30여 대가 중국 버스다. 쿠바에서 옛 종주국 러시아를 타넘고 뻗어나는 ‘차이나 파워’가 실감 나는 현장이다.

거세지는 차이나 파워는 어느 상점에 가도 대번 알 수 있다. 70가에 있는 대형 수퍼마켓 ‘수퍼메르카도 70’. 진열장에 놓인 물건이라곤 식료품과 주방세제·육류 등 기초적인 생필품이 대부분이었지만 쿠바 수준으로는 무척이나 비쌌다. 2L짜리 코카콜라 2.5페소, 1.5L짜리 쿠바산 콜라 ‘투콜라(Tu Kola)’도 1.5페소다. 쇠고기는 ㎏당 9.5페소. 한 달 12.5페소 정도를 받는 일반인들로서는 월급으로 쇠고기 두 근, 또는 2L짜리 코카콜라 5병 사면 끝이다.

이런 고급 상점 중간에 수북하게 쌓인 게 있었다. 0.55페소짜리 ‘지사(芝士)’ 치즈크래커 등 중국산 과자들이다. 옷가지·잡화류는 물론 값싼 중국산이 매장을 장악한 지 오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중국산의 약진에는 중국 정부도 한몫했다. 중국 당국은 외국인 관광용으로 쓰이는 신형 버스 1000대를 비롯해 기관차 100대, 냉장고 3만 대 등을 좋은 조건으로 제공했다. 한 쇼핑센터에서 만난 대학생 호세 가르시아는 “어디를 가든 중국 제품이 휩쓸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유를 대는 베네수엘라에 못지않게 값싼 소비재와 중장비까지 공급해주는 중국이 없으면 쿠바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중국의 선심이 공짜일 리 없다. 중국은 5억 달러를 투자, 쿠바와 ‘라스 카마리오카스’라는 니켈 채굴 합작회사를 차렸다. 쿠바의 니켈 매장량은 호주에 이어 세계 2위다. 중국은 또 쿠바 앞바다에서의 공동 유전개발 협정도 맺었다. 결국 많은 공산품을 싼값에 넘겨주는 것도 중국 ‘자원 외교’의 맥락인 것이다.

쿠바도 나름대로 중국에 성의를 표해 왔다. 200여 명의 중국 학생들을 불러 아바나대학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게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연간 40만t의 사탕수수를 중국에 좋은 가격에 수출했으며 올 8월 베이징 올림픽을 맞아 양국에서 공동 출자하는 호텔을 중국에 건설할 계획이라 한다. 양국 간 교역 규모는 급상승했다. 2005년 7억7000만 달러였던 게 2006년 18억 달러로 뛰었다. 1년 만에 두 배 이상이 된 것이다.

이처럼 경제 교류가 심화되면서 양국 정치권도 갈수록 다가가는 느낌이다. 실제로 고위급 방문이 잦아졌다. 2004년 11월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아바나를 방문했다. 이에 곧 형에 이어 쿠바 수반에 오를 것 같은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 라울이 다음해 4월 베이징을 답방했다. 한 현지 전문가는 “형 피델보다 실용적으로 알려진 라울이 권좌에 오르게 되면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더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남정호 특파원 (아바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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