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논공행상 · 아첨이 빚은 아베정권의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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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정부의 몰락
우에스키 다카시 지음
남윤호·이승녕 옮김, 중앙북스, 284쪽, 1만5000원

파국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압도적 지지로 집권 자민당의 총재로 당선되고 뒤이어 일본의 제 90대 총리로 선출된 아베 신조가 첫 내각 명단을 발표하던 2006년 9월 26일의 일이다.

그 날 오후 일본의 각 방송사들은 도쿄 나카타쵸의 총리 관저 마당에 천막까지 쳐 놓고 생방송 체제에 들어갔다. 예복을 차려입고 승용차 편으로 속속 관저에 도착하는 정치인들의 면면을 TV로 내보내기 위해서였다. 그 시각 총리의 부름을 받고 관저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곧 발표될 새 내각의 일원으로 지명됐음을 뜻한다. 여기까지는 일본 정치의 오랜 관례대로였다.

하지만 그 날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이런 진용으로 얼마나 오래 버틸수 있을까”. 나카타쵸에서 밥을 먹는 정치인이나 언론인, 평론가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관저에서 멀지 않은 야당 당사에선 오히려 쾌재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들의 예감이 현실로 입증되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스캔들에 휘말려 자살한 사람을 포함, 10개월동안 모두 4명의 각료가 금전 추문, 발언 실수 등으로 옷을 벗었다. 2007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는 자민당 창당이래 참의원에서 과반수를 내주는 참패를 맛봤고, 결국 아베 총리도 쫓기다시피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2007년 9월 1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사임을 발표하고 회의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아베는 이날 “개혁을 추진하면서 정국을 이끌어 나가는 것에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고 밝혔다. [AP]

전후 최연소 총리. 자민당 간사장과 관방장관를 거쳐 불과 5선으로 총리에 오른 고속 출세. 기시 노부스케(외조부)-아베 신타로(부친)로 이어지는 정치 명문가의 혈통. 북한의 납치 문제에 대한 대처에서 보여준 강력한 추진력과 신념으로 쌓은 국민적 인기. 이처럼 화려한 정치적 자산을 갖춘 아베 총리가 왜 1년을 못버티고 몰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국민의 피부에 와닿치 않는 이념 과잉형 노선.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이란 거창한 슬로건을 제시하고 ‘평화헌법 개정’이란 이슈에 발을 디뎠지만 정작 민생과 관련한 이슈에는 소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는 정치학자의 분석으로선 모범답안이 될 지 모른다.

하지만 『아마추어 정부의 몰락』의 저자 우에스기 다카시는 저널리스트의 본분에 충실한 미시적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아마추어 정부’란 제목속에 이미 답은 나와 있는 셈이다. 그는 현장에서 보고 들은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준비되지 못한’ 아베 정권의 허상을 속속들이 파헤쳐 내고 있다.

서두에서 예를 든 각료 인선에서 보듯, 선거 과정에서 아베 후보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의 잣대에 따라 내각과 보좌관을 코드가 맞는 측근으로만 채운 논공행상 인사, 측근 인사들의 충성 경쟁과 과도한 아첨, 그에 가리워진 정보의 차단과 혼란, 적절한 위기관리책을 못세우고 허둥거리는 수완 부족. 아베 정권의 단명은 이같은 ‘아마추어리즘’이 빚어낸 결과였다고 저자는 생생한 사례와 무대 뒤의 일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일본정치가 과연 이처럼 엉터리일까란 의구심마저 들 정도로 저자의 비판은 신랄하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이같은 아베 정권 몰락사만을 읽고 일본 정치 전체를 재단하는 것은 사려깊은 독서법이 아닌 듯 싶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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