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링銀 손실 노무라가 챙겼다-닉리슨 매수때 대량매도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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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베어링은행의 닉 리슨(28)이 파생금융상품(디리버티브)에 투자했다가 입은 거액손실의 상당부분을 일본 증권회사인 노무라(野村)와 다이와(大和)가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결과가 근본적으로 제로섬(누가 이익을 본만큼 다른 쪽이 손실을 보게 돼 있는 구조)이라는 점에서 베어링은행이 입은 손실(약 15억달러)을 누가 따 먹었는가가 그동안 국제금융가의 지대한 관심사였는데 사고가 터진 지 약 50일만에 승자(勝者)가 드러난 것이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선물(先物)거래전문지(월간)인 퓨처스 4월호는 일본 오사카(大阪)증권거래소 통계를 인용해 베어링사태의 승자와 패자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리슨은 올 1월초 일본의 주식시장이 좋아질 것으로 보고 파생금융상품의 하나인 주가지수 선물(先物)상품인 「닛케이 225」매입에 나섰다.1월6일 그는 4천9백39개(계약수 기준)의 닛케이지수를 처음 매입했다.
그러나 일본의 증시는 리슨의 기대와 달리 계속 떨어졌다.그렇지만 그는 조만간 주가가 반등할 것으로 보고 한달이상 매입을 계속해 2월17일에는 매입계약수가 2만개를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리슨이 확보한 이같은 닛케이지수 매수(買受)비중은 당시 오사카증권거래소의 전체 매수물량의 12.61%에 달했다.
이후 1주일간 리슨은 4천여개의 매입계약을 처분해 2월24일에는 1만6천개수준으로 줄여놓았으나 그동안 주가하락으로 인한 투자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뒤였다.
닛케이지수 투자에서 베어링은행이 손해보고 있을 때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금융기관은 어디고,반대편에서 재미를 본 쪽은누구였던가.
베어링에 비하면 매입한 계약수가 훨씬 적어 손실도 적긴 했지만 미국계 증권사인 설로먼 브러더스.골드만삭스와 프랑스 파리바은행등이 베어링과 함께 「침몰하는 배」를 탔던 것으로 나타났다.일본계 기관으로는 야마이치(山一)증권이 유일하게 패자쪽에 끼었다. 반면 세계에서 정보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노무라증권은 이들의 손실이 불어날 때마다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리슨과 미국계증권사들이 매수포지션을 취하고 있을 때 거꾸로 매도쪽에 가담했던 것이다.
2월중순 이후엔 다이와증권이 노무라 뒤를 이어 매도쪽에 가담,짭짤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닛케이지수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같은 공방은 오사카증시에 국한된 것이긴 하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들 금융기관이 싱가포르국제금융거래소(SIMEX)에서도 같은 포지션을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영국 최고(最古)의 은행이 도산하는 사태로 이어진 상황에서도노무라 같은 기관이 큰 이익을 챙겼다는 사실은 「먹지 않으면 먹힌다」는 냉엄한 국제금융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沈相福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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