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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韓人巨商들>1.黑民經 崔秀鎭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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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수진(崔秀鎭)-.50년3월생.흑룡강성 하얼빈시 중심가에 21층짜리 별 세개급 호텔 「민족반점(民族飯店)」운영.호텔 시가는6천만달러.이 호텔 4층에 자리한 「중국흑룡강성 민족경제개발 총공사(흑민경.黑民經)」라는 무역회사의 총경리(사 장).지난 86년이래 사업상 2백여차례 북한을 방문한 친북인사.하얼빈.평양.싱가포르가 주된 활동무대.
만주대륙을 하얗게 뒤덮는 함박눈을 창밖 너머로 바라보며 사무실에서 만난 崔사장은 방금 북한으로 보낼 밀가루의 선적(船積)을 직원에게 지시한 뒤였다.
-「흑민경」의 사업규모와 아이템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지난해엔 중국경제가 전체적으로 어려워 재작년보다 훨씬 힘들었는데 올해는 상당한 회복을 보이고 있습니다.무역거래량만 3억달러를 예상하고 있지요.무역량의 절반이상은 조선(북한)에 중국産 아연전광을 수출하고 김책제련소등에서 이를 가공 한 아연괴를물품으로 되받아 중국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쌀.옥수수.밀등 양곡을 북한에 공급하는 일입니다.』-무역량 3억달러면 북한내에서 어느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요. 『조선과의 무역거래는 우리회사가 중국에서 가장 많으니 곧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한다고 봐도 되겠군요.』 「흑민경」은 김책제련소에서 가공한 아연괴를 중국뿐 아니라 서울의 L그룹을 통해 한국에 판매하고 있다.지금까지 납품실적은 1억5천만달러.
崔사장의 사무실 정면 왼쪽 벽엔 93년4월15일 김일성(金日成) 생일에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김일성주석은 몇번 만나 봤습니까.지금 김정일(金正日)비서와는 또 어떤 관계인가요.
『金주석과는 세번 만나봤고 金비서와는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金주석은 내게 같이 찍은 사진 10장을 주셨는데 각 지사 사무실에 걸어놓았습니다.필름은 받지 않았지요.
金비서는 성품이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올해안에 한번 뵐 기회가 있을줄 압니다.』 현지의 정통한 소식통은 김정일이 최근 직접 지침을 내려 『崔사장의 빚을 우선적으로 갚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소식통은 또 『북한의 규모가 큰모든 사업은 金비서의 결재가 나야한다』며 『올해 사업상 崔사장이 金비서를 만날것』이라고 귀띔했다.
崔사장은 전 중국대륙이 광기에 빠졌던 문화혁명(66~76년)시작때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한뒤 농사짓기와 공장 「구입원」 일을 하다 문혁 막바지인 76년(26세)에 결국 지주계급이라는 이유로 10개월간의 집단린치와 옥살이를 겪었다.
-85년 「흑민경」을 설립한 뒤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고어떻게 극복했나요.기업인으로서 성공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중국에 개방바람이 한창 불던 때인데 상업과 무역을 해야 돈을 번다는 풍조가 유행했지요.그때 나도 그런 사업을 하다 빚을 60만원(우리돈으로 6천만원)이나 져 쫄딱 망했습니다.아,경제가 무서운 거구나.이렇게 죽는거구나 싶었습니다.
그때 남들이 안하는것,그러나 생활에 필요하거나 장래에 반드시사람들이 필요하게 될 것을 정확하게 찾아내야 사업이 된다는 큰교훈을 얻었지요.
국내(중국)에서는 당시 기업인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염색사업을 통해 다시 일어섰고 무역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별 흥취가없었던 對조선거래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대북(對北)무역이 아직도 어려운 상태이긴 하지만 배를 곯고 있는 같은민족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보람이 있고(그의 양곡공급은 대부분 장기외상이다)가까운 장래에 물량교류가 비약적으로 늘어날것을 믿기에 전망이 좋다고 했다.
-한국기업들과는 어느정도 접촉해 봤습니까.한국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은것은 무슨 편견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남한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해도 별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는 점을 이해하지만 통독전에 서독정부와 기업들이 동독에 총 2백억달러를 도와주었던 그런 민족애가 아쉽습니다.』 崔사장은 D그룹의對북한거래를 주선했다 실패한뒤 빚을 잔뜩 지게된 경험이 있어 그 그룹에 서운한 감정이 있다고 주변에서 얘기한다.
S그룹의 직원들은 지나치게 꼼꼼하게 따져 신중하긴 하지만 모험심이 부족한것 같고 또다른 D그룹과는 올해 안에 흑룡강省의 질좋은 저황산(低黃酸).저인산(低燐酸)석탄공급 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으며 현재 아연괴를 거래중인 L 그룹의 한 직원은 일을 어떻게든 성사시키려 하는 열성과 성실함이 있었다고서울 기업들에 대한 인상비평을 했다.
『5월초엔 생전 처음 서울을 방문하려고 합니다.서울 사람들이나를 좋아할지 모르겠군요.』 호랑이같은 그의 얼굴에서 오랜만에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서울에서의 사업계획에 대해서는 함구했으나 제철.원유.운송관련프로젝트일 것이라는 짐작이 갔다.그가 요새 온 힘을 기울이는 분야가 그것들이기 때문이다.

<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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