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도씨탈출기>5.김정일 별장 한쪽벽은 온통 TV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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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정일(金正日)은 권력 장악을 위해 측근을 전폭적으로 신임하다가 그가 너무 커졌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제거해버리는 수법을즐겨 썼다.정치보위부장 김병하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김병하는 원래 김일성 부관 출신이다.그는 사회안전부장을 거쳐73년5월 정치보위부장이 된 인물이다.
북한에서 김병하가 일하던 보위부하면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고 할만큼 악명 높은 정치사찰 기구다.노동당 정치국원 회의를도청하는 것은 물론 김일성(金日成)과 제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을 수백명씩 죽이곤 했다.보위부가 모든 고위 간 부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해놓은 것은 물론이다.때문에 간부들은 도청을 피해 부엌에서 조그마한 소리로 소곤대곤 했다.보위부는 남한으로 치면옛날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를 합쳐놓은 것같은 존재다.
정치보위부장직에 앉게된 김병하는 73~74년을 전후로 김정일의 오른팔이 됐다.김정일 집무실에 사전 약속없이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김병하였다.김정일이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줬기 때문이다.
김정일 하수인이 된 김병하는 점차 김정일과 알쌈(한통속)이 돼 방탕한 생활을 했다.산수좋은 곳에 특각(별장)을 세우고 술이야 여자야 하며 흥청망청 놀았다.
전에 나도 특각에 가본 적이 있었다.
특각 주변 10리에 개미 한마리 못들어 가게 차단해놓고 그안에 어마어마한 호화주택을 세워놓았다.건물에 들어가면 한쪽 벽은온통 TV 화면이 있다.또다른 벽에는 롤렉스.오메가같은 외제 상품을 잔 뜩 전시해 놨다.김병하.김정일 일행이 알몸 차림에 가까운 기쁨조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마시며 주패놀이(트럼프)를 하는 것이다.이기는 사람이 여자들에게 상품을 주게된다.경품을 갖고싶은 욕심에 여자는『부장동지 이기세요』하고 소리치며 응원했다.
정권의 악역(惡役)을 담당한 김병하가 제거된 배경에는 김평일-김창하(김병하 아들)가 관련돼있다.당시 김창하는 아미산 김병하 집에서 김평일과 자주 어울리며 놀았다.때때로『김평일 만세』도 불러가며.
김병하는 아들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언젠가 평일이가 권력을 물려받으면 북조선은 완전히 김병하나라가 된다고 상상을 한 것이다.
그러나 김병하는「15인 사건」을 계기로 하루 아침에 몰락했다.김병하의 행동이 히틀러 게슈타포보다 악랄해지자 보위부내 노장파 간부 15명이 김정일에게 공동 명의로 편지를 냈다.79년께일이다.조국해방전쟁(6.25)에도 참여한 이들이 편지에서 김병하의 온갖 비리를 낱낱이 까발렸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일은 공교롭게 꼬여갔다.김정일은 당시 6차 당대회 준비와 후계체제를 방해하는 김동규(金東奎).김평일(金平一)처리로바쁠 때였다.
정치보위부장과 관련된 문건이 올라오자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김병하를 불러 편지를 툭 던져줬다.『이게 뭐냐,주의해라』는말과 함께.
편지를 읽어본 김병하는 사색이 됐다.만일 문건이 불같은 성격인 김일성에게 올라갔더라면 자신은 그 즉시 처형됐을 것이기 때문이다.보위부로 돌아온 김병하는 즉시 15명을 체포,평안남도 개천군 14호 정치범관리소에 감금시켰다.반혁명죄를 뒤집어 씌워총살시켜버리려 했다.그러나 이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이들이워낙 조국해방전쟁등에서 공로를 세운 자들이라 누명을 씌우려해도쉽지않았다.자연히 조사에만 몇달이 소요됐다.
이런 와중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졌다.감금된 15명중 한명이 탈주한 것이다.김복남이란 사람이다.목숨을 걸고 탈출에 성공한 그는 평성 김일성 별장이 있는 자모산성 호위총국 소속 평성여단을 찾아갔다.정치위원으로 있는 자신의 동생을 찾아간 것이다. 거지꼴로 찾아온 형을 만난 동생은 이 사건을 소상히 적게한후 문건을 김일성에게 직접 제기했다.
며칠뒤 김정일에게 호출된 김병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김정일이 자신을 김정일 집무실에 몇시간이고 대기시켜놓는 것은물론 일일이 몸수색을 하는 것이다.
6차당대회(80년10월)가 끝난후 정치보위부는 상부로부터 특별 지시를 받았다.내일 특별 행사가 있으니 출장 나간 성원(직원)을 모두 불러들이라는 것이다.무슨 행사가 있는줄 알고 보위부 전원이 대기했다.
***3일만에 自殺 이날 김정일 친위여단이 대성구역 미산동에있는 정치보위부 6층 건물을 빙 둘러쌌다.특별지시는 미끼였던 것이다. 정치보위부 전원이 무장 해제당한후 사상검토가 시작됐다.북한에서 사상검토는 피를 말리고 뼈가 깎이는 일이다.「개새끼,소새끼」가 예삿말이다.
특히 김병하의 사상 검토는 김치구가 맡았다.당 조직부 1부부장 김치구는 호랑이로 소문난 인물이다.김치구는 김평일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어차피 죽게될 운명임을 직감한 김병하는 사상 검토 3일만에 제손으로 목숨을 끊고 말았 다.
81년3월의 일이다.
[정리=崔源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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