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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나들이] 울면서 먹는다, 매운 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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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불이 났어요. 입을 크게 벌려 큰 숨을 내쉬며 '화재'진압에 나서 보지만 역부족. 눈물까지 핑 돌더라고요. 눈 앞에 보이는 누룽지 국물을 얼른 한 숟가락 떠서 다시 진압에 나섰지요. 그런데 웬 걸….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꼴'이란 판단을 했을 땐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어요. 입안 구석구석까지 화끈거리고, 혀는 'SOS'를 외치지도 못할 지경이 됐지요. 뒷골이 당기면서 등줄기를 타고 식은 땀이 흘렀어요. 일단 식탁 위에 물 한 컵을 '벌컥 벌컥' 마셨죠. 그것도 모자라 그대로 생수통으로 달렸습니다. 눈 주위가 촉촉하게 젖은 꼴로 자리로 돌아왔죠. 그러곤 다시 젓가락을 들었답니다."

"입안에 불 지피러 가자"며 서울 홍대 근처 '홍초불닭(02-335-3444)'으로 안내하던 젊은 친구는 잰 걸음을 하며 이렇게 불닭의 첫 경험담을 풀어놨다. 서둘러 도착한 시간이 오후 7시를 갓 지났는데도 벌써 문밖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늘어섰다.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사람들의 먹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 짝이 없다. '저렇게 매운 걸 왜 먹나' '오죽 참을성이 없으면 저렇게 오두방정을 떨까'등 별 생각이 다 든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매운 맛을 달래려 연신 생맥주를 주문한다. 흐르는 콧물을 주체하지 못해 "힝힝" 풀어대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건너편에 예쁘게 단장하고 앉은 애인은 사랑스런 눈빛으로 휴지를 뽑아 건네준다.

한시간쯤 지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5분 정도 지나자 문제의 불닭(1만 2000원)이 나왔다. 정말 맵다. '맵다'보다 '혀가 아리다'는 말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은은한 단맛이 입안의 화끈함을 달래주는 매력이 있다. 청양고추를 주재료로 만든 양념장에 닭고기를 버무려 직화(直火)로 구워 낸 것. 고기가 타지 않고 맛이 잘 배도록 먼저 찌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불닭의 고기 부위는 닭다리 허벅지살이다. 살점만 발라내 한입에 쏙 들어갈 크기로 만들었다. 포크로 찍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손에 묻힐 필요가 전혀 없다. 허벅지살의 쫀득한 느낌이 씹는 맛을 더한다.

매운 붉닭의 천생연분은 누룽지 (5000원). 커다란 크기에 특별한 양념없이 누룽지만 끓여서 낸 것이다. 먹기에 따라 평생을 같이할 수도, 아니면 평생 원수관계로 지낼 사이가 된다. 뜨거울 때 먹다간 더 큰 화근이 되니 주의해야 한다는 것. 대신 알맞게 식으면 확실한 소방수 역할을 한다. 더불어 부드러운 누룽지 알은 식사가 되기도 한다. 날개.다리.닭발 등 부위별 메뉴도 있지만 손으로 뜯어야 하므로 번거롭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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