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색문화공간>1.파리 뱅센숲 "카르투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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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이뤄지는 많은 문화예술공연들이 기존의장르와 공간을 벗어나고 있다.화려한 무대가 아니어도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예술인과 객석이 없어도 개의치 않는 관객들이 거리에서,교회에서,지하철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자 세한 정보조차얻기 어려운 이같은 공연들이야말로 새로운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中央日報는 조간화 특별기획으로 세계각지에 흩어져있는 이같은 이색문화공간을 찾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註] 리는 4월에 깨어나 5월에 노래한다.
한때 총과 탄약으로 가득찼던 무기고들을 개조해 거대한 연극촌을 형성한 카르투셰리.파리시 동남쪽 뱅센 숲속 깊숙이 자리잡은이곳에는 파리에서 가장 먼저 봄의 흥취와 무대예술을 감상하기 위해 겨울내내 기다린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밖에는 1년중 가장 변덕스럽다는 4월의 가랑비가 뿌리고 있어도 올해 카르투셰리극장의 첫공연을 보려는 사람들의 기를 꺾진 못한듯 하다.
『숲속에 줄서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져요.이제 곧 따스한햇살이 비칠테고 좋은 연극이 있는데 뭘 더 바라겠어요.』 로비에 앉아 입장을 기다리고 있던 프랑스와즈 롱드류(55)부인은 이곳에서 봄을 시작하는 게 가족의 전통이라고 말한다.
이날은 카르투셰리의 8개극장중 태풍극단 소속의 2개극장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메디아』의 불어판 『메데』와 또한편의 실험극이 무대에 올려졌다.카르투셰리를 찾은 관객들의 연령층이 20대의 젊은이에서 60대 노인까지 다양 하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메데』의 연출가 길레스 그레이저(34)는 『카르투셰리에서 공연하는 것은 젊은 연출가들의 꿈이지만 작품 선정이 까다로워 쉽지않다』고 전했다.자신도 이번이 카르투셰리 데뷔작이라고 밝힌그는 『주변 분위기와 무대가 희랍이나 로마 비극 을 공연하기엔그만이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각 연극조직이 1~2개씩 소유하고 있는 극장무대는 모두 8곳.이중 5백60석의 태양극장을 제외하고는 1백~3백석 규모의 소극장들이다.이밖에 극단마다 2~3개씩의 사무실공간.소품실.세트장등을 소유하고 있어 20여채의 무기고가 모두 연극공연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원래 14세기에는 국왕의 사냥터였지만 나폴레옹이 무기고로 개조하면서 「카르투셰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2차대전중에는 독일군이 군수창고로 사용했고 전쟁뒤 프랑스군도 잠시 탄약고로 이용했다.
다른나라에서는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같은 연극촌을 개척한 사람은 우리 연극계에도 잘 알려진 여류연출가 아리안 무누쉬킨(Ariane Mnouchkine.56).
***68년 학생혁명때 점거 「저항의 연극인」으로 불리는 그는 68년 학생혁명이후 당시 비어있던 이곳을 불법점거,연극을 통한 대사회적 발언을 시작함으로써 무기고를 연극공연장으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이후 나머지 무기고들도 잇따라 연극인들에게불법 점거됐다.
80년초에야 파리시청과 타협,정상적인 임대료를 지불키로 약정을 맺었다.무누쉬킨이 대표인 태양극단의 경우 연간 임대료는 40만프랑.
무기고를 개조했다는 선입관과 달리 극장 내부시설은 세계적인 수준급이다.거의 2백여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튼튼한 시멘트블록벽면은 별도의 방음시설이 필요없을 정도여서 연극공연장으로는 그만이다.천장높이 또한 일반건물의 2개층을 합한 정도여서 완벽한조명시설이 가능했다는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다만 무대세트와 소품을 제작하는 건물과 분장실들은 여전히 예전 탄약고의 어두운 잔영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역사적 체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관계기사 47면〉 ***파리=鄭淵秀기자 사진=申寅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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