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북녘동포>3부끝 귀순자들이 말하는 남한 적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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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귀순자들의 남한정착 과정은 통일후 북녘 동포의 문제와 직결된다.귀순자들이 남한 적응과정에서 어떠한 문제에 맞닥뜨려 어떻게해결하고 있으며,이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연구된 것은아직 없다.
귀순자들은 자기들의 어려움을 호소할 곳이 마땅찮은데다 북에서의 체험담을 사시(斜視)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입장을 곡해하는 풍토에 여간 난감해 하지않고 있다.3부연재를 마치면서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민을 다각도로 들어 보았다 〈편집자註〉 『남국 동포들이 귀순자들에게 거리감을 갖고 대하기 때문에 종종좌절감을 느낀다.사람 사귀기가 어렵다.』(고청송.34) 『이곳사람들은 남을 생각해주는 여유가 별로 없는 것같다.』(김선일.
32) 『귀순자들이 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황광철.21) 『친구나 부모와의 단절에서 오는 어려움이 크다.북에 있을 때는 어디 가나 도움을 받을 곳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다.』(남명철) 『귀순자들이 이북에서 죄를 짓고 온사람이라고 취급하며 불신하는 것이 계속 마음에 상처를 준다.』(신광호.28) 『마치 죄를 짓고 내려온 사람 취급을 하기 때문에 터놓고 사람을 사귀기가 어렵다.유학생 출신들은 유학기간에한국학생을 사귄 것이 들통나 귀국후 처벌이 두려워 귀순한 경우가 많은데 이쪽 기준으로 보자면 죄라고 할 수도 없다.』(이정철.2 7) 『직업을 잡고 일하다가도 문뜩 「북에 있을 때 이정도로 일했으면 노동당 입당도 하고 대접을 잘 받았을텐데 왜 사서 고생하는가」하는 허탈감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귀순자를 대한민국 사람으로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멸시당한다는 느낌이 종종 든다.』(백영길.25) 『한국에서 외래어를 많이 사용해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김광욱.27,김명철.35) 『한자를 몰라 신문읽기에 힘들어 하는 귀순자가 많으며 신문의 세로쓰기에도 익숙하지 않다.』(임정희.
30) 『귀순자의 말투를 이곳 사람들이 못알아 듣고 가끔 웃음거리가 돼 당황스럽다.식당문화,특히 레스토랑의 양식에 익숙하지않아 곤혹스럽다.』(여금주.21) 『이곳 사람들의 생활이 다양.복잡하고 개성이 강해 제각각이어서 적응하기 어려웠다.물건 가격이 자율화되어 혼란스럽기도 했다.』(박수현.28) 『같은 물건이라도 시장마다 가격이 달라 싼 곳에서 물건을 사는 것을 익히는데 시간이 걸린다.돈의 가치를 배우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임정희) 『귀순자에게 「한국사회에선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들다」며 오로지 돈만 벌어야 한다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좋지않은 영향을 준다.』(안혁.27) ***탈출동기와 경로귀순자들은 누구 할것없이 귀순때까지 숱한 우여곡절과 갖은 고생을 겪었다.특히 우리 사회의 통념과는 달리 제3국의 한국대사관이나 영사관이 귀순자들을 적극 수용하기 보다 갖가지 사정을 들어 귀순을 허용하기 어렵다며 돌려보내는 일이 적 지 않다.때문에 귀순에 성공해 서울까지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 우리 대사관이나 영사관의 행동에 분통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았다.친구사이인 윤웅.박수현씨는 함께 북한을 탈출했지만 제3국의 한국대사관에서귀순을 받아들이지 않아 북으로 되돌 아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던 끝에 밀항을 해서라도 한국으로 가자는 결론을 내려 귀순에 성공한 사례다.
김형덕씨는 중국-베트남-중국-홍콩을 거치면서 숱한 역정끝에 귀순에 성공했고 백영길씨는 제3국을 떠돌다가 가까스로 밀항에 성공한 케이스다.
귀순자들은 탈북자가 급격히 늘어나니 제3국 대사관.영사관에서탈북자의 경력.배경을 보고 귀순을 선별 허용하는 것같아 분통이터졌다고 털어놓았다.귀순자들은 그러나 해외에서 한국의 기업인.
종교인등의 도움을 받은데는 감사를 전하고 싶어 했다.유학생 출신들은 비교적 순조로운 귀순이 가능했지만 시베리아 벌목공 출신들은 러시아등지를 떠돌다 어렵사리 귀순티켓을 걸머쥔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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