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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박물관을 찾아서 ③ 닭 문화원

중앙일보

입력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닭 울음소리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 위치한 ‘닭 문화관’은 닭을 주제로 만들어진 사립 박물관이다. 닭 박물관은 한국 전통문화유산의 일부인 닭 모양의 목 조각과 닭 민화의 보존과 알림을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 1층은 다(多) 문화 기획전시장이자 쉼터이고 2층은 상설 전시장이다. 전시품은 200여 나라 닭 문화와 3~4천 점의 닭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닭아 닭아 우지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는 죽는다.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앞 못 보는 우리 부친 어찌 잊고 가잔가!

<심청전에서 심청이의 애끊는 심정을 적절히 읊은 한 구절>

울고 나니 하늘이 트이고
높이나니 바다빛이 검프르러라.
붉은 해는 동녘에 높이 떠 있네.

<김세필 ‘시상록’ 중 한 구절>

‘닭 문화관’은 이색 박물관 가운데서 튀는 축에 속한다. 우리 삶과 일상에 개는 남아 있으나, 닭은 제 자리를 잃어버린 탓이다. 하지만 실제로 ‘닭’으로도 문화와 일상사를 논할 수 있다.
닭은 예로부터 태양이 붉게 떠오르는 새날을 제일 먼저 세상에 알린 서조(瑞鳥)였다. 아주 상투적인 수사로 새벽의 상징은 곧 닭이다. 영원히 대체되지 않을 상징이다. 그런데 우리는 닭에 대해서 딱 거기까지만 안다. 새벽과 아침 사이에서 두 세계를 잇듯 닭은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서 두 세계를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이를 테면, 닭은 벼슬이 성정이 올곧고 기품이 있는 선비를 상징했다면, 닭은 자신의 무기인 발톱을 이용해 적을 만나면 죽도록 싸우는 기백 넘치는 용자의 얼굴을 지니기도 했다. 닭은 선조들의 삶과 일상에서 거의 분리되는 법이 없었는데, 그저 생활의 일부요, 생존을 극복하는 동조자로 제몫을 톡톡히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진1) 맞선 한번 못 본채 이루어진 결혼풍습은 남, 녀의 만남이기보다는 가문 대 가문이 서로 가족의 인연으로 맺어지는 또 하나의 관계였다. 이 때 관례의 하나로 혼례상 초래청위에 올려 지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암수 한 쌍의 닭이다.

(사진 2) 신방에는 풋풋한 풀냄새와 더불어 시댁 어르신의 배려와 기원을 담은 '다산기원도'나 '부부화합도'가 걸리기도 했다.

(사진 3) 시어른이 머무는 안채에도 머리 맡 바람막이 가리개 등 가족과 화합과 평안, 그리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담은 병풍 그림이 걸려 있기도 했다.
새벽에 닭이 울면 새날을 맞은 가족은 저마다에게 맡겨진 일과가 시작되며 새댁은 시어머니를 따라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간다.

(그림 4) 닭은 귀신을 막아주고 잡귀를 쫓고 액운을 막아준다. 정월대보름에는 풍물패들이 닭탈을 쓰고 춤을 췄다. 그리고 현명한 깨달음의 이치를 충분케 해달라고 창문틀을 조각을 닭으로 했으며 닭 그림 목판을 조각으로 부적으로 찍어 집안에 음지라 여겨지는 곳곳에 붙이거나 직접 걸기도 했다. 또한 닭이 서쪽을 지키는 방위신이라 하여 사악한 기운을 잠재우거나 물리치기위해 닭을 그려 걸거나 조각해 두기도 했다.

(사진 5) 닭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고리가 되어 망자의 극락왕생과 부활을 돕는 매우 유익한 동물로 여겨졌다. 운구수단인 나무상여 위 곡두에도 오방색 칠을 곱게 한 목조각 닭이 망자를 극락세계로 인도한다. 이렇게 선조들의 삶 속에 닭은 삶 뿐 만아니라 죽음까지 민간신앙의 자체였다.

정유진 객원기자 yjin78@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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