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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세상월령가 3월] 미완의 역사를 살면서

중앙일보

입력

친구 여사(黎史 姜萬吉)에게 질문을 던졌다. 역사는 가고 있는가, 처박혀 있는가.

역사학에 역사 정체의 모든 책임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건만 1980년대 어느 술자리에서는 이런 느닷없는 일이 있기 십상이었다. 시대는 앞이 통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물러설 뒤도 없는 그런 막다른 상황, 일러 한계상황이던가.

하나의 암울한 때가 궁정동 총소리로 끝났으나 또 하나의 때가 고스란히 재생산되고 있었다.

역사는 왜 변화할 줄 모르는가. 정작 끼리끼리 모이면 혁명, 변혁 또는 개량주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노여운 개념들이 분분했으나 한밤중 허기를 느끼고 흩어지는 빈손은 적막했다. 아 이렇게도 가혹한 시대에 태어난 자는 언제까지 저주받은 자인가.

어느 국제역사학대회에서 한국의 한 참가자가 늙은 토인비에게 한국 방문을 청했을 때 즉각 무안을 당한 일이 있다. 그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의 대답은 단호했다. 천년이나 한 왕조가 존속한 그런 꽉 막힌 역사의 나라에 갈 생각이 없다는 것. 이 사실에 화를 낼 사람도 있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대 천년의 사회는 오늘따라 실감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조선시대쯤이면 내가 사는 한국사회와 연속되는 동시대적 동기부여가 가능하다. 말하자면 그것은 설화가 아닌 현실이다. 거기에 일제 36년 따위가 틈입하지 않았다면 조선시대 후기사회와 현대한국사회의 골 깊은 단절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시대가 일관될 경우 가령 실학을 개신유학(改新儒學)으로 파악하느냐 근대학으로 인식하느냐의 기로도 있을 까닭이 없다.

조선 500년의 공간도 임진왜란을 전후한 역사의 창조적 접변(接變)이 있어야 할 때가 이씨가 끝나고 정씨가 등극한다는 비결이 퍼지던 때이기도 하다.

한국사는 이 같은 조선왕조의 정체와 함께 이어지다가 자아를 상실한다. 여기 처절한 화제 하나가 있다. 유교권의 한 지사가 임신한 손자며느리와 외손녀를 데리고 만주로 망명한다. 나라 잃은 땅에서 아이를 낳으면 일본 왕의 신하 밖에 될 수 없다는 이유이다. 눈보라 때리는 만주땅 움막에서 두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 탯줄을 이로 끊어준 것도 두 아이의 증조할아버지이다. 과연 독립운동가 30여명을 배출한 애국자 가문의 중심인물 김대락옹이다.

이런 일제시대를 맞아 민족정기는 언제나 수난의 삶을 점철한다. 그 끝에서 해방은 분단이고 만다.

지금 한국은 너무나 일투성이다. 격동의 시간으로 모든 일상을 사태화(事態化)한다. 또한 1970년대 이래 국토의 어디를 가도 산이 잘려나가고 물이 막힌다. 건물들이 죽자사자하고 앞 다투어 일어선다. 10층 단위의 고층아파트가 어느새 30층, 50층 고층 아파트로 나아가고 있다. 길을 나서보아라. 엊그제까지 없던 도로가 새로 나 있다. 모든 농촌은 도시로 교체된다. 갓 태어난 지자체의 이익추구는 인간의 품위 따위와 상관없이 용을 쓰고 있다. 일러 영원한 개발도상국가의 나날이다.

하지만 정작 변해야 할 것이 변할 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분단 말이다. 이제 분단 극복에의 의지는 그 보편타당성을 담보한다. 통일을 함부로 말할 수 없던 냉전이데올로기의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런데도 분단시대에 익숙한 삶은 이른바 반세기 이상의 세월과 함께 거기에 적응하는 분단의 유전인자를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20세기 후반의 한반도 연대기가 새로운 세기를 맞아 그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했다. 남북은 더 이상의 적대 관계가 서로 백해무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평화공존을 방치한다면 민족사회와 국제사회와의 고도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 결국 두 분단체제는 열강의 노리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된 것이다.

거의 숙명적인 적대관계이던 독일과 불란서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더 이상의 전쟁은 필요없다는 각성에 이르러 손을 잡았다. 그것이 유럽공동체의 시대를 여는 틀이 되면서 동구권까지 아우르는 유럽연합을 구현한 것이다. 화폐는 생활의 기본도구일 뿐만 아니라 상징이기도 하다. 이 상징을 각국이 폐기하고 하나의 화폐 유로화를 공유하게 된 용기는 일찍이 지구상에 없었던 일이다. 이제 의회가 생겼고 헌법은 통과를 앞두고 있다. 연방헌법 원안은 그 전문(前文)에서 기독교의 신(神)을 배제하고 있다. 놀랍다.

서반구에서도 동남아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국가들의 연대가 점차 강화되어 간다. 모든 이질들이 동질화한다. 그럴수록 모든 지역의 크기는 다양한 개별성을 옹호하는 윤리를 전제한다. 이런 공존연합의 논리와 함께 전후 냉전체제의 잔재인 한반도 분단에 질적인 변화가 가해진 사실도 세계사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

세계 187개국과 유엔의 공식 지지를 받은 남북공동선언은 이것만큼 지구상의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은 일 없는 한반도의 명예였다. 이제부터 한국은 가슴 벅찬 나라이다.

그토록 많은 치욕을 벗어나지 못한 역사를 살아온 한반도는 이제 현대한국사의 일차적인 완성이 될 통일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1940년대 후반 신중국을 건설한 이래 삶의 밑바닥에서 그 질을 높여가고 있다. 일본은 15세기 이래 한번도 분할되어본 적이 없는 천연적인 안보체제로 그들의 자율적인 분권사회를 뿌리내리고 있다. 동남아 베트남의 비극도 오래 전에 끝났다.

역사진행의 역학으로 말하면 이런 나라들은 할 일이 없는 셈인지 모른다. 소련 붕괴 뒤 역사의 종언을 말한 것은 역사이데올로기의 끝장을 뜻하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한반도에서의 역사는 정작 이제부터 시작이다. 역사란 그것의 미완성으로부터 완성으로 가는 치열한 대열이다. 그러므로 한반도뿐만 아니라 각 민족의 역사적 미완성 앞에서 역사는 영원하다.

나에게는 하나의 희망이 있다. 아무리 한반도에서 현대 남북관계의 발전이 순조롭지 않더라도 휴전선의 철도연결 및 육로왕래 그리고 특구운영과 같은 민족사업은 결국 한반도 외부의 난조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사이의 신념이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100년 이내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이미 한민족은 거기에 이르는 통일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백년 이내의 분단은 분단을 소멸시키는 역사의 진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통일이 가능한가.

남의 연합제나 북의 연방제는 이제 충돌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일체의 무력통일이란 6.25 전쟁을 통해 교훈적으로 실패했다. 그래서 베트남 통일은 한반도에 적용되지 못한다. 또한 독일통일의 흡수체제도 동북아시아지역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예멘의 협상통일과도 달리 국제적 합의와 동시에 추진되는 민족 내부의 점진적인 선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다연방제 통일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분권시대와 국가연합시대를 앞둔 민족사회의 다양성을 통일을 통해 정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여러 지방정부에 국가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한반도 복합국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각 정부의 수상이 모이는 연방회의에서 연방 원수(元首)를 윤번 추대한다.

작은 나라 스위스와 큰 나라 말레이시아 다연방이나 심지어 미합중국의 사례를 한반도 다연방제에 비추어 본다. 그러나 통일이 재통일이나 과거를 복구하는 통일이 아니라 새로운 통일이 될 때의 그 미지의 역사로 하여금 비로소 역사를 완성할 것이다. 역사가 무덤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생명체라면 말이다.
고은 <스페인의 살라망카 대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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