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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왜 애견인을 '죄인' 취급 합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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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울시에서 마련한 공동주택 표준관리규약 개정안에 따르면 서울시내 아파트에서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기르려면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를 어기면 벌과금을 물어야 한다. 서울시는 "특히 생활질서를 어지럽힐 경우 벌과금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한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애견인들은 개로 인해 이웃과의 마찰이 발생하는 것을 가장 꺼린다. 그래서 가능한 한 잘 짖지 않는 개를 선호하고, 너무 자주 짖을 때엔 잔인하다는 욕을 먹어가며 자식 같은 강아지에게 성대 절제수술을 하거나 전기충격기를 달아준다. 이렇게 이웃의 눈치를 살피지만, 이웃이 개를 혐오할 경우엔 개주인은 어떻게 해도 그 이웃과 친해질 수 없다.

보신탕을 즐긴다는 이유로 국가 이미지가 추락하자 언론과 방송사가 애견인들을 대거 출연시키면서부터 국가 이미지는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이런 공로에도 많은 애견인은 이웃의 눈치를 보며 개를 키우느라 심리적 부담을 감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서울시가 졸속으로 애완동물에 관한 규약을 만들어 실망스럽다. 줄잡아 다섯집에 한마리꼴로 개를 키우고 있다는 한국갤럽의 통계처럼 우리나라의 애견인구가 1000만명을 육박하는데, 서울시가 그들의 의견을 한번이라도 들어봤는지 궁금하다. 그 흔한 공청회나 주민 의견 수렴과정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애완동물에 대한 부정적 측면만을 연상시키는 개정안을 발표해 버렸다. 키우는 사람은 키우지 않는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려 동의를 받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역감정으로 분열되고, 빈부격차로 반목하고, 노사가 갈등하고, 보수와 진보로 싸우다 날이 새고 지는 세상이다. 그런 마당에 서울시의 개정안은 아파트 주민들을 복도식은 층별로, 통로식은 라인별로 나누고 그 줄에 포함된 애완견 주인에게 인민재판하라는 식으로 애견인들을 죄인시하고 있다.

둥글둥글 함께 잘 살아가자고 설득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이웃사촌들을 애견인과 비애견인으로 나누고 대립케 해서 서울시는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TV 뉴스에 서울시의 개정안이 보도된 다음날 아침 한 어린이에게서 "아저씨, 우리 강아지 이젠 못 키우는 거예요"라며 울먹이는 전화를 받았다. 어른인 내가 참으로 미안했다. 울타리 속에서 뛰노는 강아지들에게도 같은 심정이었다.

윤신근 한국동불보호연구회 회장(동물학 박사.수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