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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늘의 위상"展-의도적 연출이 현대조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국내미술관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대규모 사진전시회가 경주 선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5월31일까지).
국내외 유명 사진작가 14명의 작품이 나란히 걸린 『사진,오늘의 위상』전에서는 다양한 기법과 독특한 표현방식으로 외국에서는 이미 예술의 한 영역으로 정착된 사진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선재미술관 큐레이터 김선정(金宣廷.30)씨는 『직접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외국 유명작가들의 사진작품을 한데 모았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매체의 세계적 흐름과 함께 한국 사진의 위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것』이라고밝혔다. 김씨의 말대로 미국 출신의 출품작가 5명은 책.잡지등인쇄매체를 통해 사진애호가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인물들이지만국내에 작품이 소개된 적은 별로 없었다.
낸 골딘과 신디 셔먼의 작품만이 93년 휘트니비엔날레(국립현대미술관)와 88년 뉴욕현대미술전(호암갤러리)에서 선보였을뿐 샌디 스코글런드,에멧 고윈,마이크 스탄.더그 스탄 형제는 이번전시를 통해 한국관람객들과 처음 만난다.
외국작가들의 작품이 걸려있는 2층전시실에 들어서면 맨먼저 뛰어난 색감의 샌디 스코글런드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사진에 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도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으로 이번 출품작들 가운데 관람객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조각.미술사등을 두루 공부한 총체적 예술가 스코글런드는 방 전체를 치밀하게 설치작업한 후 이것을 사진으로 담는 작업을 한다.예를 들어 최근작 『결혼』(1994년)은 마멀레이드가 발라진 노란색 바닥과 빨간색 딸기 잼이 칠해진 벽으로 된 방안에서결혼케이크를 앞에 둔 신랑.신부가 서있는 설치작업을 사진으로 옮긴 것이다.
또 『금붕어의 복수』『일터의 산들바람』에 들어있는 물고기.나뭇잎등의 오브제(objet)를 사진 앞에 함께 전시해놓아 이채를 띤다.이처럼 현대 사진의 경향은 과거 「찍는」사진에서 적극적으로 대상을 연출해서 「만드는」사진이 주를 이루 고 있다.
스코글런드 작품 맞은 편에 위치한 신디 셔먼 작품 역시 대상을 의도적으로 연출한 후 카메라에 담는 「구성사진」(constructed photographer)들.자신을 연출한 사진으로유명한 셔먼의 근작들은 작가 스스로 분장해서 표 현한 변형되고뒤틀린 인간의 모습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에 반해 낸 골딘은 연출없이 본인과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남자친구한테 맞아 눈가에 퍼렇게 멍이 든 자신의 모습,파트너가 에이즈에 걸린 남자 동성연애자의 모습등 싸구려영화 스틸같은 이미지의 사진들이다.
특히 최근에는 지금까지 모아둔 사진 여러장을 한데 모아 영화커트를 결합한 것같은 스타일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쌍둥이 형제 마이크와 더그 스탄은 전통적 사진개념을 깨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사진 이미지를 나무.쇠파이프등과 함께 설치한 단 한점의 오리지널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선재미술관 큐레이터 신미경씨는 『이번 전시에 출품한 외국작가들은 사진작가라기보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사진 매체를 이용한 미술가(artist)들이지만 대다수 한국작가들은 미술의 기반없이 처음부터 카메라만 가지고 작업해온 사진작가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한계때문에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는 단순한카메라작업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씨의 지적대로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있는 1층 전시실은전반적으로 밋밋한 느낌을 준다.컬러사진이 거의 없는데다 풍경등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평범하게 옮긴 사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주로 걸려있는 첫번째 전시실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구본창.김대수등의 작품이다.
구본창은 시계를 찍은 인화지를 불태워 형태가 없어진 작품으로시간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김대수는 동판을부식시켜 이미지를 표현하는 사진과 판화가 결합된 「포토에칭」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원로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걸려있는 이정진의 작품은 인화지가 아닌 한지 위에 특수한 약품을 처리해 표현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慶州=安惠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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