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시시각각

일렬로 앉은 대통령과 참모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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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의 대통령 당선인도 급하기로는 나폴레옹에 뒤지지 않겠다. 이른 아침 인수위 조찬회의에 나와 말했다. “난 먹고 왔는데 천천히 드세요.” 샌드위치가 어디 목으로 넘어갔겠나. 얹히지 않았으면 다행일 터다. 그의 성걸함 역시 열정에서 나온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5년뿐이니 더 바쁘다. 덕분에 그와 일하는 사람들은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야 한다.

그렇게 운 없는(?) 대통령실 사람들이 지난주 정해졌다. 성질 급한 보스와 함께 뛰는 동안 “사생활은 꿈도 못 꿀” 사람들이다(실제 이들은 국정 운영 워크숍에서 보스와 함께 운동장 15바퀴 구보도 했다). 반년마다 점수를 매긴다니 조금만 뒤처져도 보따리 쌀 각오를 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 고생이 싫어 총선 출마를 고집한 이들도 많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붙잡힌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위로보다 비아냥이 많다. 교수 출신이 많다고 ‘청와대학’이라고 하고, 특정 지역 출신이 많다고 ‘영남대(嶺南臺)’라고도 한다.

나는 그보다 다른 게 걱정스럽다. 직업이나 고향은 눈감아 줄 수도 있겠다. 일 못해서 몸이 근질거리는 당선인이 자기랑 함께 일할 비서를 뽑는 일이니 그렇다. 죽도록 부려먹을 텐데 어찌됐든 맘에 맞는 사람을 골라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공부 많이 한 교수들이니 아는 것도 많을 테고 참모로서 제격일 수 있겠다. 그런데 그들의 학력을 보면 영 뒷맛이 켕긴다. 수석 7명 중 5명이 경제학 전공이다.

국민이 당선인에게 기대하는 것이 ‘경제 살리기’라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참모란 보스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줘야 할 존재들이다. 다양한 시각으로 입체적인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 최선에 이르기 위해 난상토론도 필요할 터다. 참모회의를 서로 마주보는 원탁에서 하는 이유다. 그런데 몽골대학교 명예 경제학박사, 목포대학교 명예 경제학박사인 대통령과 경제학을 전공한 미국 박사 수석들이 영화 보듯 일렬로 앉아서 어떤 토론을 펼칠까. 행여 “나를 따르라”는 구령과 “옛서!”라는 복창만 들리는 건 아닐까.

성과와 효율로 무장한 저돌성은 당선인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정부조직 개편안을 밀어붙이는 거나 불탄 숭례문의 연기를 보며 국민성금 복원을 떠올리는 것 모두 거기에서 출발한다. 빨리 일을 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데 타협하고 남 얘기 듣는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다. 비효율적이고 경제성이 없는 거다. 하지만 성과와 효율만으로 국가를 경영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물신주의 독초는 인간다운 삶의 성찰을 파먹으며 자란다. 원조 시장주의자인 애덤 스미스의 훈수처럼 덕성을 무시한 효율성 강조는 사회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경계한 것도 그것이다. 정약용이 아들에게 쓴 편지다. “양계를 한다고 들었다. 좋은 일이다. … 농서를 숙독해 좋은 방법을 골라 보거라. 빛깔로 구분해 보고 횟대를 달리 써보기도 해 닭이 살찌고 번식도 낫게 해야지. …하지만 이익만 따지고 의리는 무시하거나 기를 줄만 알고 운치는 몰라 이웃 채마밭 늙은이와 밤낮 다툰다면 못난 사내의 양계인 거다. … 속된 일을 하더라도 맑은 운치를 얻는 것, 언제나 그걸 예로 삼도록 해라.”

이런 조언을 할 수 있는 참모가 필요한 건 아닌지. 전공만으로 못하리라 예단하는 건 섣부르다. 그리고 내 우려가 정말 섣부른 것이면 좋겠다. 그래도 이것만은 염두에 두도록 하자. 나폴레옹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평가는 반반으로 엇갈린다는 것 말이다. 나폴레옹은 결코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