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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벌레 변신 박지은, ‘메이저 퀸’ 명예회복 선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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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25면

AP= 본사 특약

2008년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가 15일(한국시간) 하와이에서 티오프된 SBS오픈을 시작으로 10개월 대장정에 들어갔다.

“지긋지긋한 슬럼프 … 세리 언니처럼 벗어날 것”

1998년 박세리의 LPGA챔피언십 우승 이후 꼭 10년. LPGA 투어는 이제 한국 여자 골퍼들의 주무대가 됐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아직 LPGA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올해도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는 강한 면모를 보일 것이다. 오초아의 독주를 수잔 페테르센(스웨덴)·폴라 크리머(미국)·카리 웹(호주) 등이 내버려둘 리 없다. 박세리(31)·김미현(31·KTF)이 이끄는 ‘코리안 시스터스’는 어느 해보다 강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유럽의 우승 후보들과 우승컵을 다퉈야 한다.

LPGA 시즌 개막과 함께 중앙SUNDAY는 박지은(29·나이키골프)을 주목한다. 2004년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에 이어 상금 랭킹 2위까지 오른 그녀는 최근 몇 년 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박지은은 지난해 미국의 인터넷 골프전문 사이트 골프닷컴(www.golf.com)이 가장 섹시한 여성 골퍼로 꼽은 8명 가운데 한 명이다. 박지은의 아름다운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박지은은 훈련을 많이 하는 선수가 아니다. 국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많은 골퍼가 학업을 포기하다시피 한 채 스파르타식 훈련을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초등학교 시절 미국에 건너간 박지은은 남이 시켜서 하는 운동을 싫어한다. 그래서 성적이 좋지 않을 때마다 ‘훈련을 게을리한다’는 비판에 시달린다.

2004년 크래프트 나비스코 대회에서 우승한 박지은

그러던 박지은이 달라졌다.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이 되면서다(박지은은 1979년생이다). 그는 지난겨울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지난해 12월 일찌감치 미국에 건너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훈련했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을 없애기 위해 이른 아침 체력 전담 트레이너와 함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오전엔 스윙 코치 피터 코스티스(미국)의 지도를 받아 샷을 가다듬었고, 오후엔 연습 라운드를 하며 실전감각을 키웠다. 그렇게 한 달이 넘도록 단조로운 일과를 반복했다. “이렇게 많은 훈련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벌써 제가 서른 살이라니…. 나이 서른이 주는 의미가 남다르더군요. 이전에는 몰랐는데 서른 살이 되면서 책임감이랄까, 그런 걸 느끼게 됐어요. 후배들은 하루가 다르게 치고 올라오는데 창피한 생각도 들었고요. 여기서 더 무너지면 끝이라는 위기감도 작용했어요. 이대로 선수 생활을 접을 수는 없잖아요.”

박지은이 슬럼프에 빠진 것은 2005년. 2004년 2승을 거둔 이듬해 성적이 급전직하했다. 세계랭킹 1위를 노리고 훈련을 하다 허리를 다쳤다. 스윙 코치를 교체한 것도 문제였다. 타이거 우즈의 스승 부치 하먼(미국)을 찾아갔다가 역효과를 냈다. 서둘러 스윙을 바꾸려다가 특유의 호쾌한 드라이브샷을 잃어버렸다. 지난해 정규 대회에서 결정적인 순간 OB(아웃 오브 바운즈)를 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대회에선 하이브리드 클럽을 들고도 OB를 냈어요. 아마추어 골퍼들이 흔히 말하는 ‘난초’를 쳤지요. 페어웨이 좌우로 휘어져 나가는 어이없는 샷 말이에요.”
고질적인 허리 통증에 샷까지 들쭉날쭉하니 자신감을 잃었다. 거기다 ‘남자 친구에 빠져 훈련을 게을리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나이 서른 살이면 남자 친구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요. 남자 친구 때문에 훈련을 게을리해서 그렇다는 말을 들었을 땐 너무 억울했어요. 성적이 나쁘니까 ‘박지은 어머니가 친모가 아니다’는 소문까지 들리더군요. 올해는 그런 헛소문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성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네요.”

박지은은 그동안 몸무게가 4㎏ 이상 줄었다. 지난해 미용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나중엔 성적 부진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다 보니 저절로 체중이 줄었다.

박지은은 지난해 박세리가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 “세리 언니가 저보다 먼저 슬럼프를 겪었잖아요. 그런 언니가 지난해 우승하는 걸 보고 눈시울이 시큰했어요. 나도 이 지긋지긋한 슬럼프를 벗어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지요.”

다짐을 실천하듯 시즌 첫 대회인 SBS오픈(2월 15~17일ㆍ하와이)부터 출전했다. 지난해까지는 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미국 본토에서 멀리 떨이진 곳에서 열리는 대회라서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지은은 어려움 속에 자신을 던져 넣어 보기로 했다. 결과는 나빴다. ‘각오했던 대로’ 2라운드 합계 9오버파를 쳐 컷통과에 실패했다. 역시 골프는 무너지기는 쉬워도 다시 일으켜 세우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올해는 제가 ‘홀로서기’를 하는 첫 해가 될 겁니다. 나이에 걸맞게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알아서 훈련도 하고, 대회에도 출전해야지요. 올해 목표요? 골프와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거지요.”

명예 회복을 위해 박지은이 가야 할 길은 멀다. LPGA 무대에는 강한 선수들이 늘었다. 국내 무대에서 실력을 검증한 뒤 LPGA 무대로 쳐들어간 후배들도 쉬운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박지은은 이미 메이저 대회를 제패해본 세계적인 선수다. 그 실력과 가능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 박지은에게는 ‘골프는 자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라는 말이 실감날 것이다. 박지은이 꿈을 이루려면 결국 이 싸움에서 이기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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