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 서로 교수초청 심포지엄 강연요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작금 세계경제의 혼돈상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과학의 두가지 개념을 원용하는 것이 긴요하다.하나는 지질학의 지판구조론(地板構造論.Plate Tectonics)이고 또 하나는 생물학의 돌변균형론(突變均衡論.Punctuated Equil ibrium)이다. 대륙의 지판은 지구표면을 서서히 변모시키지만 갑작스레지진.화산폭발을 일으키기도 한다.돌변균형의 시기엔 점진적이던 진화(進化)과정이 급격한 변화를 보이면서 적자생존(適者生存)해오던 종(種)이 갑자기 사라지고 다른 종으로 대체된다.
지구표면을 변화시키는 대륙의 지판처럼 세계경제의 외양을 변화시키는 근본요소로 크게 다섯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공산주의의 몰락이다.인류의 3분의1에 달하는 공산세계 주민들이 자본주의로 편입되면서 생기는 급격한 변화가 세계경제를변모시키고 있다.舊소련은 원유나 알루미늄을 수출하지 않았지만 러시아는 수출하고 있다.소련붕괴이후 이 나라 과 학자들은 전세계 자본주의 국가로 흩어지고 있다.
둘째,장기적으로 자연자원.자본의 힘보다 기능(Skills)이유일한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지식산업(Man-made Brain Power Industries)시대가 오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혁명이후 증기.내연기관등 필수생산수단을 자본 가들이 줄곧 소유할 수 있었다.그러나 지식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진화의 적자였던 자본가가 새로운 적자에 의해 대체될 상황에 처했다.향후 진보 핵심의 지력(智力)은 개인의 머릿속에 실현된 것으로 자본가들이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생산요소 이기 때문이다.
셋째,인구구조의 변화다.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일하지 않고 정부연금등으로 소비만 하는 고령(高齡)인구가 급증하는 사회에 살고있다.2040년이면 미국인구의 40%가 65세이상으로 채워질 것으로 추산된다.고령유권자들의 입김으로 복지비 감축도 어려워진다.선거에 좌우되는 민주국가의 정부는 결국 재정파탄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또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빈국→부국으로의 인구이동이 일어나고 있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넷째,글로벌경제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다극화된 교역 및 경제질서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국제규범이나 교역질서가 부족하다는 점이다.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세계무역기구(WTO)등은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 협정(NAFTA)과 같은 경제블록이 자꾸 생겨나는 추세여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다섯째,금세기 강력한 경제.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수행했던세계질서관리기능을 맡을 나라가 앞으론 등장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연간 1천3백억달러의 경상수지흑자를 내고 있는 일본을 우선 상정할 수 있지만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일본은수출에만 관심이 있고 국내시장은 개방하지 않고 있다.
이 다섯가지 경제적 지판들이 상호작용-반작용을 거듭하면서 현재 세계경제의 돌변균형 시기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주목할 점은 이들 지판이 지구의 경제적 표면이라 할 부(富)와 소득의 분배를 불평등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산업화시대의 경제불평등 심화는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 극심하다.지난20년간 미국경제의 총소득 64%가 상위 1%에 돌아갔다.
경제적 지판의 움직임은 또한 지진.화산폭발과 같은 돌발변화도일으킨다.멕시코경제는 통화위기가 닥치기 반년전만 해도 거시(巨視)경제지표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고수익을 찾아 멕시코에 몰려들었던 자본이 미국 금리인상등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예측불가능한 지진.화산폭발처럼 한나라 경제가 불시에 파산상태에 빠진 것이다.
문제는 보다 강력한 경제적 지진.화산폭발이 세계경제의 지판구조에 내연(內燃)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막대한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이 어느날 갑자기 국내시장을 봉쇄한다고 가정해보자.이 경우 대일(對日)무역적자를대미(對美)무역흑자로 메워왔던 環태평양 국가들의 경제는 일시에파탄에 빠지게 될 것이 틀림없다.
디플레이션 시대의 도래가능성도 그 하나다.공산권의 양질(良質)인력이 자본주의권으로 몰려들고 다운 사이징등으로 기업고용은 감축되는 가운데 실업(失業)증가와 실질임금.구매력의 저하현상이확산되고 있다.
또 개도국이나 저개발국은 저가(低價)를 무기로 한 수출지향정책을 앞다퉈 채택해 국제적 가격인하경쟁을 부추기고 있다.인플레시대가 가고 디플레시대가 오고 있는 징조다.
이밖에 파생금융상품등의 발달로 금융정책이 무력해지고 있고 재정정책도 고령인구의 복지소비로 흡수돼 경기부양효과가 의문시되고있다. 콜럼버스가 불확실한 지도를 가지고 일본으로 떠났다 자기도 모르게 북미대륙에 도착했던 것처럼 세계경제가 경제적 지진.
화산폭발을 거쳐 어떠한 균형점에 도달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없다. 〈정리=洪承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