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 칼럼

공원 벤치와 숭례문, 그리고 봉하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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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승용차를 타고 가다 차창 밖으로 꽁초를 집어던지는 사람이 있다. 차는 내 것이기 때문에 깨끗하게 관리하지만 거리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은 청결하게 유지하면서도 산에 놀러 가서는 음식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일단 오물이 조금만 버려져 있으면 쓰레기장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공공재산은 이처럼 쉽게 훼손된다. 경제학에선 이런 걸 ‘공공재산의 비극(tragedy of public assets)’이라고 부른다.

 불타 없어진 숭례문은 그런 비극의 극치다. 비극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돼 왔다. 노숙자들이 몇 년 전부터 밤이면 심심찮게 드나들었다고 한다. 잠을 자고 라면도 끓여 먹고 술도 마셨다는 증언이 나왔다. 추운 날엔 깡통에 불까지 피워놓고 잤다고 한다.

가치를 잴 수도 없는 이런 보물을 어느 개인이 가졌다면 어땠을까. 우선 비싼 보험에 들고 밤낮으로 잘 돌봤을 것이다. 재난 대비도 철저히 해 불이 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상세한 지침도 마련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숭례문은 공공의 재산이었다. 그 덕에 노숙자들의 소변 냄새에 찌들다 화마에 사라졌다. 숭례문이 얼마나 보잘것없었던지는 가입했던 보험을 보면 수치로 확인된다. 전소됐지만 받을 보험금은 고작 9508만원이라고 한다. 작은 아파트만도 못한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숭례문은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국화 한 송이 들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영락없는 조문객이다. 아무리 그래도 숭례문은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다운 사랑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인의 애인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겐 진짜 애인이 없다. 숭례문도 그랬다. 국보 1호로 국민 모두의 보물이었지만 동시에 누구의 보물도 아니었다. 아파트는 주인에게서 특별한 사랑을 받지만 숭례문은 그런 애틋한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다.

국보 1호를 태워 먹으면서 교훈조차 얻지 못한다면 정말 억울하다. ‘공공재산이란 자칫 관리를 소홀히 하면 이런 운명에 처한다’. 이것이 이번 불행에서 배울 가장 귀중한 교훈이다. 공공재산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세금이다. 세금은 내기 전까진 내 재산이지만 정부 금고 속으로 들어가면 공공재산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공원의 벤치 같은 대접을 받는다. 내 주머니에 있을 땐 귀한 대접을 받지만 정부 금고로 들어가면 눈먼 돈처럼 취급된다. 힘 있는 기관이나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인 양 헤프게 쓰이곤 한다.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가 봉하마을이 아닐까.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 돈을 들여 봉하마을로 내려오는 그를 환영하는 일까지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하지만 퇴임할 대통령을 위해 새 집을 짓고, 그 주변을 꾸미는 데 수백억원의 세금이 들어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늘 부족한 세금이 이 시점에 꼭 이런 일에 쓰여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봉하마을 지원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봉하마을 개발에 75억원, 봉화산 웰빙숲 개발 30억원, 화포천 생태 체험시설 60억원, 진영시민문화센터 255억원, 진영공설운동장 개·보수 40억원 등 모두 495억원이 투입된다고 한다.

국민의 의무 가운데 으뜸 가는 게 납세 의무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세금 내기를 싫어한다. 공공의 재산이 되는 순간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숭례문처럼.

심상복 경제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