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가는 게 뭐가 어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서울에 사는 주부 박모(43)씨는 최근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아들을 데리고 정신과를 찾았다. 컴퓨터 게임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서다. 아이는 심지어 학교 수업 중에도 컴퓨터 게임을 하기 위해 몰래 PC방에 갈 정도다.

박씨는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기록이 남아 나중에 아이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저했다”며 “그런 불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가벼운 증상으로도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이 많다는 주변의 조언으로 병원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 아들은 ‘충동조절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다.

박씨와 같이 본인 혹은 가족의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노인인구가 많아지면서 늘어나는 치매환자,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가벼운 증세 등 정신과를 찾은 이유는 다양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06년 건강보험으로 진료받은 정신질환자는 180만7762명으로 집계됐다고 14일 발표했다. 2001년 134만3900명에서 5년 사이에 35%나 증가한 것이다.

◇“가벼운 증세도 병원으로”=의료계에서 분류하는 정신질환은 흔히 ‘미쳤다’고 표현하는 정신분열증에서부터 치매·우울증·알코올장애까지 100개에 달한다.

건보공단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어나는 질환은 치매·정신지체·우울증과 같은 기분 장애, 알코올 사용에 의한 정신·행동장애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치매환자는 3만1158명에서 8만8804명으로 185%나 늘었다. 정신발육 지체환자도 5년 새 80% 증가했으며 이 기간 동안 우울증·조울증 등을 포함하는 기분장애 환자도 48% 증가했다.

반면 이 기간 중 정신분열증이나 망상성 장애 등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사람은 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일산병원 박상진 전문의는 “어느 사회나 정신분열증이나 망상성 장애 환자의 비율은 일정한 수준이 유지된다”며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던 질환이 있는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화정신과의 사승언 원장은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틱(눈·얼굴 등을 움찔거리고 심한 경우에는 팔다리를 흔들어대는 행동)이나 산만함 같은 가벼운 질환으로도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각종 지원책에 환자 양지로…”=건보공단 국민의료비통계센터 주원석 파트장은 “치매 환자가 늘어난 것은 고령화로 노인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데다 7월부터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인 장기요양보험은 치매나 중풍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가정에서 요양시설을 이용할 때 비용을 지원해 준다. 이 시설을 이용하려면 진료를 통해 장기요양인정자로 판정받아야 한다.

또 국민연금에서 정신질환자에게 장애연금을 지급하는 데다 최근에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늘어난 것도 정신과를 찾는 환자가 늘어난 원인으로 분석된다. 박상진 전문의는 “정신 질환자에 대한 각종 지원책이 나오면서 정신과를 찾는 환자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숭례문 방화범 채씨, 지능적이고 치밀…시너 계속 흐르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