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연의패션리포트] 올봄 거리엔 꽃물 들겠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1면

올봄 파리패션쇼에 등장한 꽃모자 꽃드레스. [AP 연합]

갈수록 딱딱해져 가는 사회라지만 패션계만큼은 여전히 로맨틱하다. 올봄과 여름, 유행을 만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은 모두 달콤한 로맨스에 빠져버렸다.

계절이 바뀌면 패션 브랜드들은 프레스(기자단)를 불러 신상품 프레젠테이션을 연다. 행사가 유난히 많았던 요 몇 주 동안 샤넬과 펜디, 디올 등의 신상품을 보며 느낀 것은 유난히 로맨틱 스타일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증거 1 롱 스커트가 다시 왔다. 롱 스커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번도 주류 트렌드 대열에 끼어 보지 못했다. 땅에 끌리는 길이의 롱 스커트가 이번엔 드디어 기세를 펼칠 태세다. 이렇게 된다면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집시를 떠올리는 티어드(teared, 층층이 붙은 주름 스커트) 스타일의 긴 원피스다. 올여름엔 땡볕 아래서 긴 치마를 입고 도시를 활보할 여성들을 종종 보게 될 것 같다. 더 많은 짧은 미니를 은근히 기대하는 남성들에겐 다행히 다른 좋은(?) 소식이 있다. 스커트 대신 짧은 반바지가 유행할 것이라는 얘기다.

오페라의 주인공인 카르멘이 입었을 것 같은 층층 주름이 있는 롱 스커트엔 왠지 남국의 정열적인 로맨스가 담겨 있는 듯하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런 롱 원피스에는 굽이 높은 하이힐보다는 아주 납작한 통(thong, 납작한 슬리퍼 형태의 샌들)이나 줄이 얼기설기한 일명 ‘글래디에이터 샌들’이 딱이다.

증거 2 뉴욕·밀라노·파리 등 세계 패션의 중심 도시에선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올봄 ‘꽃 무늬’ 프린트에 ‘꽂혔다’. 발렌시아가와 돌체&가바나는 꽃 프린트, 혹은 모네의 유화 작품 등을 주제 삼아 컬렉션을 완성했다. 심지어 소니아 리키엘의 패션쇼에서는 모델들이 화사한 꽃을 모두 머리에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데이지 꽃은 70년대 히피 문화의 상징하기도 하다. 이번 시즌 ‘꽃’의 대두는 70년대 히피 무드가 재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히피 패션은 당시에도 자연친화적이고 로맨틱했다.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앞세운 히피들은 하늘색이나 녹색 같은 꽤 과감한 색상들을 눈매에 칠했다. 여기에 긴 머리를 풀어헤쳐 자연미를 더했다. 그들의 옷은 무늬와 장식이 많아서 현대적이거나 모던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질 만능주의로 치달아가던 현대 문명에 반하여 자연주의, 평화주의를 주창하던 히피 정신이 올봄 패션계의 ‘꽃’ 테마로 나타난 셈이다.

증거 3 맑은 수채화 같은 파스텔톤의 색들이 올봄에 사랑받을 대표적 컬러다. 질 샌더와 셀린 패션쇼에서 선보인 색들은 화가들의 팔레트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 화사했다. 이 파스텔 색조는 가장 패셔너블한 색이라고 추앙받던 블랙을 몰아냈다. 가을·겨울 시즌에 비해 봄·여름용 의상은 검은색이 약세인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화사해질 여성들의 옷장, 밝아질 거리…. 기대되는 봄이다.

강주연 패션잡지 엘르 부편집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