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에 무게 실리는 화재 … 범행 동기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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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숭례문 화재 사건을 지켜보는 범죄학자들은 방화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범인이 사회적인 불만이나 메시지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방화를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숭례문은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재라는 점에서 방화범이 사회의 이목을 끌기엔 가장 적절한 대상이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방화는 전형적인 ‘보복 범죄’다. 이창무 한남대(경찰행정학) 교수는 “보험금 지급을 노리거나 범죄 은폐를 위한 범행을 제외하면 방화는 자신의 불행에 대한 한풀이와 앙갚음이 동기”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주로 불화를 겪는 친지·이웃의 집, 자신을 해고한 회사 등이 범행 대상이다. 하지만 숭례문은 특정 개인의 원한과는 상관없는 문화재다. 따라서 범인은 개인적 복수심이 아니라 숭례문에 얽힌 상징성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에선 정신적 쾌감 때문에 연쇄 방화를 저지르는 ‘방화광(piromania)’이 사회적인 이목을 끌기도 한다. 한국에선 아직 드문 편이지만 점차 이 같은 사례가 늘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범죄심리학) 교수는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한국 문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숭례문을 불태우는 것으로 범인은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려고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불우한 처지를 비관해 사회에 반감을 품은 ‘반사회적 성격장애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치적 성향에서 비롯된 다수에 대한 분노를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자의 소행일 가능성도 있다.

수년간 이어진 문화재 방화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005년 4월 신문지와 부탄가스를 이용해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질렀던 60대 남성은 경찰에서 “토지보상 문제로 불만이 있어 사회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같은 해 5월 경기도 수원 화성(華城·사적 제3호) 누각에 불을 붙였던 20대 무직자도 “중학교 중퇴 뒤 직장 없이 카드빚만 늘었다”며 사회에 대한 적의를 드러냈다. 200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1990년부터 14년간 방화 범죄를 분석한 결과 방화범 대부분은 무직이거나 경제형편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일부에선 모방 범죄의 가능성도 우려했다. 이황우 동국대(경찰행정학) 교수는 “수사 상황을 지켜봐야 하나 이번 사고는 2004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처럼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는 ‘묻지마 범행’의 성격도 있다”며 “유사 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범인을 검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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