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간 ‘국보 1호’ 보험금이 고작 9508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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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숭례문은 국보 1호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보험으로 인한 보상은 ‘재해복구공제’ 명목으로 9508만원밖에 안 된다. 방재시설 구축 사업 순위에서도 밀렸다. 문화재청은 2005년 낙산사 화재 이후 중요 목조문화재에 방재 시스템을 설치하기 시작해, 지난해 1차로 해인사·봉정사·무위사·낙산사 등 4곳에 수막설비 등을 설치했다. 숭례문은 우선 구축 대상인 124개 목조문화재 목록에서 48번째에 올라있을 뿐이다.

문제는 숭례문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당장 보물 1호인 흥인지문은 어떤가. 전국의 목조 문화재들이 숭례문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방치’되고 있다. 현재 문화재청에 등록된 전국의 목조 문화재는 모두 145개. 이 중 국보급이 이번에 불탄 숭례문 등 23개, 보물급이 흥인지문을 포함해 122개다. 이렇게 목조 문화재가 많은 나라에서 화재 관련 문화재 전문가가 한 명도 없고, 화재 예방 훈련조차 전무한 것이 문화재 관리 시스템의 현주소다. 조유전 토지박물관장은 “문화재를 하는 사람으로서 혀 깨물 일”이라며 통탄했다.

◇이름만 국보 1호=화재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과 주무부처인 문화재청 관계자 사이에 오간 대화는 우리 문화재 행정의 수준을 그대로 드러냈다. “국보이니까 신중히 진압하라”는 얘기나, 그 말을 듣고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얘기나 비전문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문화재청은 2005년 12월 ‘문화재 재난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매뉴얼대로 비상상황에 대비한 시스템은 가동되지 않았다. 숭례문을 관리하는 중구청 관계자는 “관련 매뉴얼은 없고 우리가 맡은 유지·보수는 청소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길을 제대로 잡지 못한 원인으로 기와 밑 ‘적심’에 붙은 불을 못 봤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적심은 서까래와 기와 사이에 있는 나무구조물로 버팀목 역할을 한다. 평소 숭례문 구조 도면을 숙지하고, 화재 방지 매뉴얼에 따른 훈련이 축적됐더라면, 화재 현장의 소방관과 문화재청 직원 간의 대화는 달랐을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2006년 숭례문을 시민에게 개방한 이후에도 특별히 취해진 조치가 없다는 점이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상황별·형태별·단위별·종류별 실전 노하우가 전무하다. 재난별 훈련도 전혀 없었다. 관계 규정도 없다. 화재 방지 매뉴얼은 초등학교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반복되는 인재(人災)=현 정부에서 일어난 두 건의 대형 문화재 화재는 낙산사와 이번 숭례문 사고로 기록된다.

문화재연구소의 보존과학 전문인력 25명 가운데 화재 쪽은 없다. 문화재청은 1984년 이후 발생한 16건의 주요 문화재 화재에서 쌍봉사 등 6건에 대해서는 조사 보고서조차 갖고 있지 않다. 낙산사 화재 이후 별로 변한 것이 없고, 수많은 목조문화재는 여전히 또 다른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김성우 연세대 건축학과 교수는 “도심의 옛 건축물도 문제지만, 한국의 목조 문화재는 산속에 많이 있는데 전국 산속의 사찰 등은 거의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배영대·김호정·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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