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 쏴 발화지점 부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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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프랑스에서 귀국해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출석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처음 보고받았을 때는 연기만 난다고 해 금방 진화될 줄 알았다. 그런데 30분마다 보고를 받는데 사태가 점점 심각해졌다. 물대포라도 쏴 발화지점을 부숴야 한다고 처음부터 얘기했는데 최악의 경우가 일어났다. 이런 상황, 솔직히 나도 이해 안 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11일 오후 열린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는 숭례문 전소 소식을 듣고 황급히 귀국 길에 올라 오후 3시55분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곧장 여의도 국회로 달려왔다.

문광위 회의실을 들어선 그는 웃음기 하나 없는 굳은 표정이었다. 숨을 고르곤 한동안 메모에만 열중했다. 유 청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6일 8박9일 일정으로 해외 출장을 떠났었다.

회의 중간에 참석한 그는 발언 기회가 주어지자 “말할 수 없이 참담한 기분”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책임 소재를 묻는 질문엔 “나도 이해가 안 된다”는 말로 비켜갔다.

유 청장은 화재 소식을 10일 오후 9시15분쯤(한국시간) 처음 들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었다. 전화로 적극적인 초동 대응을 주문해 쉽게 불이 꺼질 줄 알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이날 문광위 회의에서 의원들은 화재의 책임 소재가 서울시장 시절 숭례문을 개방한 이명박 당선인에게 있는지, 관리 책임을 진 노무현 정부에 있는지를 놓고 공방을 주고 받았다.

문광위 회의가 끝난 뒤 유 청장은 오후 8시쯤 숭례문 현장을 찾았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부덕의 소치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유 청장은 사임 여부에 대해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책임이다. 개인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면 얼마든지 사임이 가능하지만 그럴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보를 망친 책임과 뒷수습은 내가 맡겠다”고 주장했다.

글=이상복·이현택 기자 ,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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