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高의 현장-업종별 영향.실태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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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일본의 엔화강세에 따른 기쁨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예상밖의 가파른 속도로 원화값이 치솟으면서 비상이 걸렸다.수출은 벌써부터 일부 품목의 주문량이 줄어드는가 하면 출혈수출이 우려되는등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반면 수입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일부 기업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을 보이는등 희비가 갈린다.원高로 명암이 엇갈리는 업종과 대기업.중소기업등의 대응책을 짚어본다.
[편집자註] 『현재와 같은 절상속도라면 재무상태가 약한 중소직물수출업체들의 연쇄도산마저 우려된다.』(李相慶 섬유산업연합회조사부장) 『일본 엔高에다 우리 원高까지 겹쳐 채산성이 최악의상태다.원가부담을 자체흡수해 나간다하더라도 달러당 7백50원이마지노선이다.』(金光錫 대우중공업기획담당이사) 올들어 엔고라는예상밖의 훈풍을 만나 수출호경기를 누리나 하던 즐거움도 순간,우리나라 돈값이 오르자 수출관련업체들은 울상이다.
무엇보다 결제통화인 달러값이 떨어지다보니 수출채산성이 악화돼당장 원가부담으로 이어지는 진통이 따르고 있다.게다가 채산성을맞춘다고 수출가격을 올리자니 아직 품질보다 가격으로 경쟁하는 상황이라 이도 여의치 않다.
물론 엔고절상폭이 원화강세보다 높아 일본제품과 경쟁하는 반도체.자동차.고급 가전제품등 분야에서는 아직 가격경쟁력이 있어 수출이 늘어나고 있지만 하반기부터는 그 효과가 급감할까 우려를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원화강세의 직격탄이 가해진 곳은 무엇보다 섬유.완구.신발류등경공업분야.머플러.넥타이.머리장신구 등을 수출하는 중소업체인 샤론실업의 김정재(金正載)사장의 말을 들어보자.『지난해말 프랑크푸르트박람회에서 오더받은 것을 지금 내보내고 있는데 올들어 원화가 20원이나 오르는 바람에 1백50만원정도 손해보고 있어요.최근에는 원자재가격마저 올라 힘에 부쳐 넥타이는 재고품으로내보낼 정도예요.』사실 섬유업계에서는 지난해 올 가을.겨울용제품 수출상담시 기준환율을 7백70~7 백80원으로 잡았다.원화강세가 7백50원으로 이어지면 눈뜨고 달러당 20~30원씩 손해볼 판이다.
섬유업계 대부분은 『정부의 환율정책이 반도체등 경쟁력이 높은산업에 맞춘 것 같다』면서 『섬유산업은 고사되는 것 아니냐』고우려를 토로하고 있다.최근 섬유업종에서는 중소업체의 경우 달러당 7백60원으로 원가계산하는 업체들이 늘고있 는데 환율이 7백60원밑으로 떨어지면 문닫을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많다.코오롱처럼 7백원선까지 각오하는 대기업들은 예외라 할 수 있다.
원화강세의 어두운 그림자는 경공업에만 미치지 않는다.조선업계도 잔뜩 구름이 끼여있다.『원고가 엔고로 인한 경쟁력회복의 기회를 까먹고 있다.조선은 1백%달러 표시주문인데 원절상은 회사수입을 줄이고 환차손을 늘려 심각한 악재다.』(李鐵 한진중공업이사) 李이사는 조선업은 2년뒤의 수주를 미리 해야 하는데 향후 원절상의 폭을 예측하기 어려워 2중고를 겪고있다고 밝혔다.
플랜트등 산업기계업종에서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엔고로 동남아등 제3국 시장진출을 늘리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었는 데 예상밖의 원화강세라는 복병을 만난 것이다.수출물량은 늘어나고 있지만 채산성은 악화되는 실정이다.안으로 멍든다는 얘기다.
세일중공업의 김희철(金熙哲)차장은 『수출수주는 크게 늘고있으나 채산성이 악화돼 버티컬 머시닝센터등 일부는 수출가격을 인상시키려 하고 있다.그러나 일부부품은 거래선확보 차원에서 밑지고내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자동차.반도체.가전. 철강.유화등 중화학업종에서는 원화강세가 당장 영향을 미치지는 않고 있다.원화절상으로 설사 수출가격을 올린다 하더라도 경쟁상대인 일본제품보다는 덜 오르기 때문이다.올들어 달러에 대한 원화값이 2.4%정도 올랐다면 일본 엔화에 대한 원 화값은 9%정도 떨어져 아직도 엔고의 훈풍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현대자동차의 김종혁(金鍾赫)수출기획부장은 『엔화가 절상되는 속도가 원화보다 빨라 크게 걱정할 것 없다』면서 『원화절상폭을 봐가며 수출가를 5~8% 올릴 것이지만 수출은 20%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낙관했다. 반도체는 원고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 품목.워낙 경쟁력이 강하기 때문.『현재 국제시세가 강세를 보이고 있어 최악의경우 7백원까지 내려간다 해도 견딜 수 있다.』(崔生林 삼성반도체사업본부 기획부장) 철강쪽도 89년이래 최대의 호황을 맞고있는데다 경쟁업체인 일본이 엔고로 고전하고 있어 큰 걱정이 없다는 분위기다.
최근의 부도사태로 가뜩이나 자금난에 쪼들리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이번엔 원高 벽에 부닥쳐 울상이다.대기업은 그런대로 융통성이 있으나 중소기업은 뾰족한 방법이 없어 타격이 더욱 크다.특히 원자재를 일본으로부터 들여와 완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업체들은 원고외에 엔고부담까지 겹쳐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견 안료메이커 삼원(三原)산업은 일본으로부터 물감의 주 원료인 크레사민을 수입한 후 미국에만 연간 5백만달러 규모의 안료를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원자재값이 최근 1년사이에 급등한데 반해 수출가격은 올리지 못해 채산을 맞추기가 땀이 날 지경인데 최근 원화강세로앉은자리에서 값을 깎이는 형편이다.이 회사 이종만(李鍾萬)사장은 『크레사민은 t당 1만2천달러에 육박해 독일등 유럽쪽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려 했으나 마르크貨도 치솟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일본산을 쓰고 있다』며 『원화가 계속 오르면 수출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지었다.상장업체인 ㈜원림은 아예 이 달 중순부터 미국지역에 대한 천막 용지 수출을 중단한 상태.이회사 무역부 최석주(崔錫周)차장은 『수출물량의 70%이상을차지했던 미주지역을 버리고 일본시장 공략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하면서 에틸렌 품귀로 원료를 제때에 수입하지 못하는 것도 큰 고충이라고 털어놨 다.
코리아볼트등 금속가공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들 업체들은 조합 중심으로 수출선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중국산 볼트.너트의 저가공세로 이도 여의치 않아 자체 원가절감 운동에 매달리고 있다.코리아볼트의 어득수 무역과장은 『신용장이 들어오면 바로 은행네고를 하는등 환차손(換差損)줄이기에 나서고 있지만 큰보탬은 안된다』고 말했다.
閔國泓.高允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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