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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떠오르는 파워 엘리트 ‘486세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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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08면

중국 정·관계에서 ‘486세대’가 떠오르고 있다.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나이가 40대인 ‘파워 엘리트’ 그룹이다. 이들은 문화대혁명(1966∼76년)을 겪은 50∼60대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실용적이다. 중국 사회에선 ‘젊은 피’다. 이들은 각계각층에서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전파하며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인재 드문 문혁세대 제치고 개방·실용의 ‘젊은 피’ 약진

황리신

지난해부터 486세대는 중앙정부의 장관급과 지방 성장급 고위직에 하나 둘 발탁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말 끝난 31개 성·시·자치구의 지도부 인선에서 486세대는 지방 고위직(270명)의 20%를 차지했다.

공산당 중앙 당교(黨校) 차이샤(蔡霞)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40대가 요직에 기용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며 “개혁·개방을 선언한 78년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개시된 지도자 육성 노력이 마침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언론들은 3월 초 열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를 계기로 486세대가 또 한번 약진할 것으로 내다본다.

선두 그룹은 장관·성장에 포진

선두 그룹으로는 45세 동갑내기인 쑨정차이(孫政才) 농업부장, 후춘화(胡春華)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가 자리하고 있다. 쑨 부장은 ‘옥수수 박사’로 유명하다. 산둥(山東) 라이양(萊陽)농학원을 졸업한 뒤 베이징농림과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이어 옥수수 연구로 박사 학위를 획득했다. 쑨 부장은 베이징현대자동차 공장이 위치한 순이(順義)구 구청장과 당 서기를 거쳐 베이징시 비서장으로 일하던 2006년 12월 농업부장의 중책을 맡았다. 60년대생으로는 처음 장관 직에 발탁된 것이다.

반면 후춘화는 시짱(西藏·티베트) 전문가다. 83년 베이징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앙의 좋은 보직을 마다하고 기피 지역인 시짱 근무를 자원했다. 2006년 11월 공청단의 1인자인 중앙서기처 제1서기로 발탁될 때까지 19년간 시짱에서 일했다. 그는 공청단 시짱자치구 부서기 시절 시짱자치구 당 서기(88∼92년)였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함께 4년간 일한 특수 인연이 있다. 공청단과 시짱이라는 공통 분모 때문에 후춘화는 ‘리틀 후진타오’로 불리고 있다.

저우창(周强·48) 후난(湖南)성장은 486세대 중 ‘1호 성장’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95년 공청단에 들어가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98년부터 8년간 공청단 1인자 자리를 포함해 모두 11년간 공청단에서 활약했다. 2006년 9월 후난성 대리성장에 임명된 데 이어 지난해 2월 정식으로 성장에 부임해 지방 행정을 익히고 있다.

지난해 8월 국방과학공업위원회 주임(장관급)으로 발탁된 장칭웨이(張慶偉·47)는 ‘미래의 총리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를 추진한 항공우주과기집단(그룹) 총경리를 지냈다.

지린(吉林·46)과 루하오(陸昊·41)는 486세대로서 나란히 베이징시 부시장으로 활약 중이다. 경제중심 상하이(上海)에는 탕덩제(唐登傑·44)·아이바오쥔(艾寶俊·47) 부시장이 있다. 누얼 바이커리(努爾 白克力·47) 신장(新疆)자치구 주석은 위구르 출신의 소수민족으로는 유일하게 성장급에 오른 인물이다.

여성 486세대의 선두 주자는 황리신(黃莉新·46) 장쑤성 부성장, 우란(烏蘭·46) 네이멍구 자치구 부주석이다. 각각 엔지니어, 몽고족이란 게 특징이다. 지난달 인사에서 최연소 여성 부성장 기록을 세운 셰루(謝茹·39) 장시성 부성장은 경제학 박사 학위에다 업무 실적, 빼어난 미모까지 갖춰 화제가 되고 있다.

덩샤오핑, 앞을 내다보고 인재 육성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등 혁명 세대는 평생을 전쟁과 혁명 속에서 보냈다.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 세대는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하고 기술관료로 배양됐다. 시진핑(習近平·55)과 리커창(李克强·53)이 이끄는 5세대 지도부는 문혁을 체험한 마지막 세대다.

그러나 486세대는 문혁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본격화한 80년대 초에 대학에 들어가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문혁 세대보다 더 개방적이면서 실용적 가치를 중시한다. 이들과 같은 세대인 한국의 ‘옛 386세대(지금은 486세대)’가 중국의 문혁 세대처럼 이념을 추종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에서 문혁 세대는 ‘인재의 공백기’란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이를 일찌감치 간파한 인물이 덩샤오핑이었다. ‘10년 대재난’으로 불리는 문혁 기간에 대학 입시마저 중단되면서 대학 교육은 파행을 겪었다. 대학을 가야 할 젊은이들은 상산하향(上山下鄕) 정책에 따라 산간 오지로 내려가 노동을 해야 했다. 한창 지식을 연마해야 할 시기에 1600여만 명의 인재가 이 무렵 농촌에서 논밭을 갈고 외양간을 치우며 육체 노동을 했다. 문혁 세대가 중국 사회를 이끌어야 할 시기가 되면 우수 인재를 공급하는 데 공백이 생길 게 불을 보듯 뻔했다.

덩샤오핑은 문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먼저 대학입시를 정상화했다. 동시에 간부 연경화(年輕化)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이른바 세대교체 작업이다. 결국 486세대는 문혁 세대를 대체할 인재군으로 집중 육성된 셈이다. 486세대는 문혁 세대와 달리 정규 대학 교육을 착실히 받아 기본기가 탄탄하고 전문성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석사 학위 보유자가 대부분이고 박사급도 적지 않다.

486세대의 대약진에 대해 신화통신은 “젊고 패기 넘치는 우수 인재를 정부 조직에 수혈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혁·개방 1세대’인 486세대는 앞으로 중국 정계의 6세대 지도부를 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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