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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 잠수함에 추적 당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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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미국 해군의 키티호크 항공모함과 호위함으로 이뤄진 함대가 지난해 11월 홍콩 정박을 거부당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던 길에 대만해협을 통과했다. 그러자 중국이 즉각 잠수함과 미사일 구축함을 보내 미행했다. 이를 발견한 미 함대가 항해를 중단하고 전투체계를 가동하며 중국 함선과 28시간 동안 해상에서 대치극을 벌였다.”

대만의 중국시보가 최근 보도한 내용이다. 한반도에서 멀지 않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사 대결이 심상치 않다. 여기에 경제력을 키운 중국은 계속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양국이 첨단 무기체계를 동원해 동북아시아의 예민한 지역에서 벌인 대치극을 주목하는 이유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의 무기체계와 군사 작전술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이번 사건을 상세하게 재구성했다.


지난해 11월 23일. 대만해협.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사이의 통로인 이 바다는 가장 좁은 곳의 폭이 131km 정도이니 그리 좁은 물길은 아니다.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 키티호크와 다섯 척의 호위함으로 이뤄진 키티호크 스트라이크 그룹은 대만과 중국 본토 사이에 있는 이 해협을 통과하고 있었다.

지휘관인 리처드 우렌 제독은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일본 요코스카에 배치된 키티호크 항모는 호위함들과 함께 21일부터 24일까지 홍콩에 기항하며 미국의 전통적 휴일인 추수감사절 휴가를 보낼 예정이었다.

함대에서 일하는 장병이 8000여 명. 1만 명이 넘는 본국의 가족들도 대거 홍콩으로 와서 대대적인 상봉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행복한 꿈을 꾸며 홍콩 바로 앞까지 항해했지만 입항을 코앞에 두고 갑작스럽게 중국 군 당국이 키티호크의 홍콩 기항을 거부하면서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자랑스러운 키티호크에 상처를

키티호크가 어떤 배인가. 자랑스러운 ‘퍼스트 네이비 잭(The First Navy Jack)’ 깃발이 세찬 바닷바람을 받아 마구 펄럭이는 함선이 아닌가. 7개의 붉은색과 6개의 흰색 가로줄이 그려진 위로 한 마리의 향미사(Rattlesnake·響尾蛇) 종류의 뱀과 ‘나를 밟지 말라(DONT TRED ON ME)’라는 글이 적힌 이 깃발은 원래 예사 군함에는 걸 수 없었다.

퍼스트 네이비 잭은 미 해군이 건국 초에 사용했다고 알려진 것으로, 미 건국 200주년을 맞아 1976년 일시 부활했다. 75년 10월 13일부터 76년 12월 31일까지 모든 미 함선에 이 깃발을 휘날리도록 한 것이다.

그러다 80년 해군장관이던 에드워드 히달고는 취역 중인 미 해군 함선 가운데 가장 오래된 배에 이 깃발을 달도록 지시했다. 해당 함선이 퇴역하든지 활동이 불가능해지면 그 다음으로 오래 취역한 배로 이 깃발을 넘기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61년 취역한 키티호크는 98년 9월 30일부터 이 깃발을 달았다. (사실은 보스턴 항에서 항해하는 미 해군 소속 범선 컨스티튜션함이 208년이라는 최장 취역 기간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의식용 군함이라 빠졌다.)

퍼스트 네이비 잭에 그려진 뱀은 몸에 미 독립전쟁 당시 주의 숫자와 같은 13개의 줄이 있어 건국 초부터 미국인들이 각별히 사랑해왔다. 이 깃발은 미국 그 자체를 상징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 항공모함은 라이트 형제가 인류 최초로 비행기를 날린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에서 이름을 따지 않았는가. 만재배수량 8만1780t인 이 항공모함은 326m 길이에 86m의 폭, 그리고 높이 12m나 되는 우람한 몸집을 자랑했다. 현대적 수퍼 항모로는 사실상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이 배를 무시한 것은 미 해군, 나아가 미국 자체를 우습게 본 것이다.

◇엄중 경계 속 대만해협 통과

그래서 미 해군은 일종의 무력시위 차원에서 중국이 껄끄럽게 여기는 대만해협을 통과하기로 했다. 요코스카에서 홍콩으로 갈 때는 대만의 동쪽을 지나갔지만, 돌아갈 때는 대만의 서쪽인 대만해협을 지나가기로 한 것이다.

중국은 대만이 자기 영토이며 따라서 대만해협은 내해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중국의 주장일 뿐인 것이다. 함대가 대만해협에 이르면서 경계가 대폭 강화됐다. 네 척의 수상함은 키티호크 주변을 둘러쌌으며, 바다 밑으로는 잠수함이 귀를 곤두세우고 혹시나 모를 적의 접근을 감시했다.

하늘에는 항모 키티호크에서 띄우거나 멀리 주일 미군 기지에서 날아온 비행기들이 주변 해역을 샅샅이 살폈다. 우선 2700만 달러짜리 S-3 바이킹 초계기가 2명의 조종사와 4명의 관측요원을 싣고 최고 시속 800km로 주변을 비행했다.

쌍발 제트 엔진을 갖춘 이 비행기는 수상 감시용 I-SAR 레이더와 적외선 감시시스템, 대잠수함용 소나 부이 등을 가동하며 밤낮으로 항모 전단 주변을 감시했다. 혹시 위협적인 적함을 발견할 경우 즉시 공격할 수 있도록 하푼 대함미사일과 매버릭 등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했다.

고도 8000~9000m 상공에선 E-2C 호크아이 조기경보기가 떠다녔다. 항모전단의 조기경보를 책임진 이 쌍발 터보 프롭 항공기는 다섯 명의 승무원을 싣고 시속 500km이하로 바다 위를 날아다니며 적의 동태를 살폈다. 이 항공기에 장착된 APS-145 레이더는 최대 540km 떨어진 곳까지 감시할 수 있다.

3600만 달러짜리 P-3C 오라이언 대잠초계기는 수중에서 적 잠수함이 내는 음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음향정보처리기기인 UYS-1은 물론 화상레이더, 전자광학장치 등까지 가동했다. 이 초계기는 수중에서의 음향은 물론 주변을 지나는 어떤 배에서 나는 소리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전자전을 위한 EA-6B 프롤러까지 떴다. 위협적인 적의 통신을 방해하고 레이더를 교란해 함대의 위치를 숨기는 강력한 전자전을 수행할 수 있다. 수중에서는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이 바닷속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음향을 모조리 체크하고 있었다. 함대는 유유히 대만해협을 항해했지만 주변 하늘과 수중에선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경계가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잠수함·구축함의 은밀한 추적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이상을 발견한 것은 P-3C 오라이언 대잠초계기였다. 주일 미군 기지에서 날아와 함대 주변 해역을 감시하던 이 비행기는 중국의 쑹(宋급) 잠수함 한 척과 미사일 구축함 선전호가 키티호크 함대의 뒤를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항공기는 키티호크의 항해가 아니더라도 사실 수시로 중국 인근 해역을 감시하고 있었다. 중국 측 군함과 잠수함의 활동을 감시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중국 본토에서 나오는 다양한 전자신호를 감지하는 활동도 해왔기 때문이다. 중국 인근 해상에선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쑹급’ 잠수함은 중국이 처음으로 완전 자체 개발한 디젤 잠수함으로 2250t급이다. 중국 해군이 12척을 보유하고 있다. 60명이 탈 수 있는 이 잠수함은 시속 41km로 항해할 수 있으며, 수중 300m까지 잠항할 수 있다. 74.9m의 길이에 폭은 8.4m, 높이는 5.3m 정도다.

이 잠수함은 미 해군, 특히 키티호크에 아픈 기억을 안겨준 적이 있다. 2006년 10월 26일, 쑹급 잠수함 한 척이 미 해군이 훈련 중인 오키나와 근해에서 여러 겹의 방어막을 뚫고 키티호크 바로 앞까지 접근한 것이다.

이 잠수함은 키티호크 9km 앞에서 수상으로 떠올랐다. 이 정도 거리면 이 잠수함이 장착한 미사일은 물론 어뢰로도 키티호크를 공격할 수 있을 정도다. 실전이라면 초대형 사고다. 중국 해군으로선 유사시 가장 큰 먹이인 미군 항공모함을 은밀히 공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순간이었다. 쑹급 잠수함의 은밀성이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선전’은 98년 취역한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최신예 미사일 구축함으로 6100t급이다. 중국에선 ‘051B형’이라고 하며, 나토에선 루하이급으로 부른다. 이 배는 홍콩 주변을 포함한 남중국해를 책임지는 남해함대 소속이다. 홍콩 주변에서부터 따라왔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미국 측이 몰랐다는 것이다.

사실 이 배는 중국 군함으로선 처음으로 레이더에 반사되는 전파가 줄어들도록 몸체가 설계됐다. 이번에 그 효과를 확인한 셈이다.

◇대만해협에서 벌어진 해상 대치극

이 두 척의 배가 몰래 키티호크를 뒤쫓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받은 우렌 제독은 즉각 함대에 전투 태세를 발동하고 함선을 모두 정지하게 했다. 전투 태세가 발동되자 키티호크 갑판 아래에 있는 대형 통로는 임무지점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다가오는 적을 제거할 근거리 무기들이 장착된 갑판 측면에는 비상이 걸렸다.

유효사거리 8km의 포탄을 분당 85발까지 쏠 수 있는 고속 76mm 함포와, 모터로 탄약을 장착하는 초고속 25mm 부시마스터 기관포, 근거리 보트 공격에 대비하는 12.7mm 기관총 사수들은 푸른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발칸포를 기반으로 제작해 최장 사거리 2km로 분당 3000발까지 발사할 수 있는 근접방어 무기인 Mk-15 20mm CIWS 팰렁스도 마찬가지다. 이 무기는 함선으로 접근하는 미사일을 최후 단계에서 요격하는 무기체계다.

키티호크 항모의 갑판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임무에 따라 갖가지 색깔의 옷을 입은 요원들이 바쁘게 뛰어나니며 F/A-18 함재기를 이륙시켰다. 엘리베이터로 항공기와 미사일, 폭탄이 갑판으로 올라오는 소리, 이를 장착하는 수병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증기로 움직이는 캐터필러가 강력한 힘으로 함재기를 밀어 고속으로 이륙시키는 소리로 갑판은 온통 시끄러웠다.

하늘로 올라간 함재기에는 적의 함선을 격침할 수 이는 하푼 미사일 등 강력한 무기들이 실려 있었다. 항모가 위협받으면 곧바로 적을 공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문제는 키티호크 함대가 항해를 멈추고 전투 태세를 취하자 중국 잠수함과 구축함도 함께 멈췄다는 점이다. 미국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중국 군함들이 물러나지 않고 버틴 것이다. 미 함대도 계속 버텼다. 중국 함선 주변으로 무기를 가득 장착한 미 해군의 F/A-18 함재기가 날아다니고, 각종 정찰기에 대잠 헬기까지 오가도 중국 함선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위기. 미국으로서도 물러설 수 없었다.

중국 해군의 쑹급 잠수함 지휘본부에선 베이지색 잠망경 타워를 중심으로 짙은 청색의 근무복을 입은 잠수함 승무원들이 지루한 듯 자리를 지켰다. 함대본부는 이들에게 계속 버티라는 명령을 내렸다.

같은 시각 키티호크에서도 우렌 제독을 비롯한 지휘부가 비행갑판에서 함재기들이 뜨고 내리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휘하 이지스 순양함과 구축함의 지휘실에선 장교들이 LCD 화면으로 가득 찬 벽면을 응시했다. 하늘과 수중에서 보내오는 각종 데이터는 중국 함선이 계속 버티고 있다는 걸 나타내고 있었다.

다행히 다른 중국 함대가 접근하는 동향은 발견되지 않았다. 중국 본토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안이어서, 중국 공군의 움직임도 주시해야 했다. 주변을 지나는 인공위성에서도 시시각각 데이터가 전달됐다. 워싱턴의 해군성과 펜타곤(국방부 본부)에서도 각종 정보를 종합, 분석해 알려왔다. 백악관에서도 이 사태를 보고 받고 주시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베이징의 모처에선 공산당 고위간부가 군 지휘부와 외교부 간부를 차례로 만나고 있었다. 외교부는 “애초에 홍콩 기항을 불허해 문제를 만든 게 잘못”이라는 입장이었다. 양국 교역량이 얼마인데 이렇게 군사적인 대결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군은 달랐다. 대만에 무기를 팔고 중앙정부가 분리주의자로 규정한 달라이 라마를 초청한 미국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교역량이 얼마인데 미국이 이런 상황에서 감히 대응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대치가 시작되고 28시간이 흘렀다. 누가 먼저인지는 모른다. 미국과 중국의 고위 핫라인이 가동됐고, 양국 함선들이 거의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향은 반대였다. 오랜 대치는 끝났다. 미국 함대는 요코스카의 주일 미군 기지에서, 중국 함선들은 본토의 기지에서 24일 밤을 맞았다. 대치를 풀기까지 양국 간에 어떤 뒷거래나 대화가 있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채인택 중앙일보 기자
ciin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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