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패션도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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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중문화나 역사·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행을 선도해 온 패션업계의 올해 키워드는 ‘지구온난화’라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보도했다.

지구온난화가 패션업계의 최대 화두가 된 것은 급격한 기후변화로 봄·여름·가을·겨울의 구분이 사실상 무너졌기 때문이다. 가을 옷 하면 울이나 모피 등 두껍고 따뜻한 소재만 생각했던 여성복 업체들도 이제는 하늘하늘한 시폰 소재의 옷이나 레이스 달린 여성복 등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변화의 바람은 뉴욕 패션주간(1~8일)의 패션쇼 무대에서도 두드러졌다. 도나 카란, 트레이시 리즈, 말로, 바들리 미치카, 피터 솜, 나넷 레포레 등 유명 디자이너들은 가볍고 하늘하늘한 소재로 된 가을 옷들을 대거 선보였다. 날씨가 예상 외로 따뜻할 경우에 대비해 옷 두께를 조절할 수 있도록 얇은 옷을 여러 겹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도 관심을 모았다.

디자이너 듀오 마크 배질리와 제임스 미슈카는 실크 시폰처럼 가벼운 소재로 가을 옷을 만들면서도 울처럼 따뜻한 소재의 느낌이 들도록 디자인한 옷을 내놓았다. 얇은 옷의 편안함과 시각적인 따뜻함 모두를 노린 것이다.

디자이너 토머스 아퀼라노는 “옷을 선택하는 일 자체가 날씨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며 “지구온난화로 인해 급격한 기후변화가 빈번해지는 만큼 앞으로는 계절과 무관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따뜻한 날씨가 매출에 영향=패션업계가 지구온난화에 눈을 돌린 것은 기후변화가 실제로 매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 2년간 미국 시장에서 가을 여성복 매출 성장세는 제자리 걸음에 머물렀다. 여름 같은 가을 날씨가 계속되면서 굳이 가을 옷을 따로 마련하는 여성의 숫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회사인 엔피디 그룹은 “1~2년 사이 가을용 여성복 매출 증가율이 남성복이나 아동복에 비해 더 낮았다”며 “최근 10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옷 선택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의류 브랜드인 리즈 크레이본은 아예 신제품 출시에 앞서 기상학자의 의견을 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계절 간 경계 허물기’에 반대하는 업체도 여전하다. 명품 브랜드인 마이클 코스 등은 이번 패션쇼에서 모피와 울 등 기존 소재를 바탕으로 한 제품을 내놓았다. 계절에 따른 제품 구분이 무너질 경우 다양한 소재를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전체 매출까지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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