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硬直된관료조직이 발전 장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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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가 차지하는 몫이 결코 작지 않다.그 몫은 서울대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기대와,기관으로서의 역할에서 비롯된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서울대의 역할이 탄탄한 학문적 토대위에서 이루어지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서울대 에 대한 기대 또한 때로 허망한 것일 수가 있다.
이처럼 서울대가 지니고 있는 명목적 가치와 실질적 가치의 괴리를 이번 中央日報의 기획시리즈가 거의 망라적이면서 적나라하게파헤쳤다.어찌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고 또 달리 생각하면 서울대가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서울대의 허상인 그 현황과 원인을 보다 나은 개혁을 위해 정리하면 우선 서울대는 이미 운신의 폭이 줄고 경직된 거대 관료조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어느 누구도 이 조직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서울대의 도서시설.연구시설.출판시설,그 리고 교수등을 비롯해 이른바 서울대의 인프라가 세계 수준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는 지적은 서울대가 갖고 있는 자원의 적정 배분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배분의 문제만이 아니다.겉으로는 화려한 발전상이 시선을 끌면서도 기존 강의실은 대부분 낡고 물이 샌다.정작 무엇부터 해야옳은지를 모르는 대학의 거대 관료조직이 관악의 한복판에 버티고있는 것이다.
관료조직의 타성은 학문까지 짓누른다.대학이 해야할 본디 기능이 학문인지,관리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본말이 전도돼 버린지이미 오래다.학교의 운영이 관료주의적 양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있는 예로 舊시대의 잔재인 학사협의회에 교수를 모으는 것을 들수 있다.세계의 어느 대학에서 교수들이 소집에 의해 모여 대학당국의 설명인지,통고인지를 듣는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대학을 도식적인 기존 척도에 따라 평가하려 드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도 관료주의에 젖어 버린 타성의 한 산물이다.대학은 숫자로 환산되는 평가척도 외에 이성.창의.통찰.혜지(慧智)가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문명의 장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측정하겠다는 것인지 반론을 제기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더 딱한 것은 지식정보사회가 도래하고 있음에도 그 준비에 앞장서야 할 대학이 기술적으로만 대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사회에 대한 대비는 전산망을 구축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지식정보사회의 도래는 현재의 대학이 아닌 가상대학(Vir tual University)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기에 대학의 기능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뀐 토대위에 서울대 발전상이 제시되었어야 옳았다.
그러나 서울대가 안고 있는 보다 큰 문제는 교수사회,학문세계에 엄존하는 무경쟁상태라고 아니할 수 없다.정확한 능력평가 없이,그리고 연륜에 대한 고려 없이 정년이 보장되는 웃지 못할 제도를 견지하고 있는가 하면 연구와 강의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외면당한 채 「한번 교수면 영원한 교수」인 특권으로 해 학문의세계는 키가 자라지 않고 있다.대학인 스스로 부끄러운줄 알고 학문적 아집과 오만을 접는 가운데 경쟁에서 지는 자는 도태된다는 대학내 규범이 정립되고 실천돼 야 한다.그리고 서울대인부터학문 이외엔 아무런 특권을 가질 수 없다는 인식도 스스로 심어야 한다.관악산 기슭 한자락에 올라가 캠퍼스를 내려다 보면 흉물스런 시멘트 회색건물이 대부분을 차지한 교정 틈틈이에 현대식건물이 들어서며 내 일을 맞고 있다.그 안에 진정 학문이 정좌할 수 있도록 새로 발족되는 「대학발전위원회」가 대학조직과 관리의 중심을 학과로 옮기며 감량경영등 개혁을 주도하는 가운데 대학을 대학인이 맡아 관리하고 대학인답게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되 스스로를 제어하는 책임이 공존하여,심오한 학문의 세계를탐구하는 희열이 교정에 넘치기를 기원해본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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