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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드라이버의 유혹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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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20면

중앙포토

“폭발적인 비거리를 보장한다.”

 매년 봄 골퍼들은 이런 종류의 드라이버 광고를 보게 되고 혼자 입맛을 다실 것이다. 새 드라이버를 장만하면 거리가 좀 난다고 잰 체하는 동창이나, 직장 동료를 혼내줄 수 있을 것 같다. 골프숍 주인은 “버디 몇 번 잡으면 충분히 원금 회수하는데 뭘 망설이느냐”고 유혹한다.

 이런 광고를 믿어도 될까. ‘골프 다이제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아니다. 1980년부터 2004년까지 24년 동안 아마추어 골퍼의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 증가는 10야드 정도에 불과하다.

드라이버 광고에 따르면 골퍼들의 비거리는 매년 10야드씩은 늘어나야 한다. 1980년 200야드를 쳤던 골퍼는 현재 440야드를 쳐야 맞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24년 동안 늘어난 것이 고작 10야드다.

PGA투어 선수들은 같은 기간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가 30야드 정도 증가했다. 아마추어보다 훨씬 많이 늘었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 드라이버 덕은 아니다. 골프 상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타이거 우즈나 어니 엘스 같은 1m90㎝ 안팎의 뛰어난 신체조건을 가진 선수들이 골프라는 스포츠에 대거 유입됐다. 그들은 유연성 훈련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골프 스윙만을 위한 몸을 만든 사람들이다.

거리 향상은 드라이버보다는 공의 영향이 더 크다. 늘어난 30야드 중 드라이버의 몫은 아마추어처럼 10야드 안팎으로 봐야 한다.

용품업체들은 이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거물 증인이 나타났기 때문에 소용없다. 증인은 타이거 우즈다. 그는 지난해 말 2008년형 드라이버를 테스트하면서 “요즘도 퍼시먼(감나무) 드라이버로 친다. 2008년형 최신 드라이버가 퍼시먼보다 10~15야드 정도 더 나간다”고 말했다. 감나무 드라이버는 1979년 테일러메이드의 금속 드라이버가 나오면서 사라진 과거의 유물이다. 29년 동안 수많은 기술과 광고가 난립했지만 결국 얻은 것은 잘해야 15야드에 불과하다는 결론이다.

한 골프 용품업체의 사장은 “똑같은 스윙을 해도 5야드씩 더 나가는 드라이버가 있다면 그 드라이버가 시장을 모두 평정할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드라이버 업체가 난립하는 것을 보면 그런 드라이버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드라이버가 발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79년에 헤드 재질이 감나무에서 금속으로 바뀌면서 1차 혁명이 일어났다. 금속은 내구성이 강하고 속을 비워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96년에 나온 대형 티타늄 드라이버는 무게 조절이 가능해 무게중심을 뒤로, 아래로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스위트 스폿에 정확히 맞지 않은 공이 형편없는 샷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아졌다.

우즈도 그것은 인정했다. “퍼시먼 드라이버로 칠 때는 정확히 스위트 스폿에 맞히지 못하면 3번 아이언 거리 정도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대로 얘기하면 최신형 드라이버는 정확히 맞히지 못해도 스위트 스폿에 명중시킨 샷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최신형 드라이버는 어느 정도 잘못 친 샷을 용서해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스윙보다 더 뛰어난 비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모든 잘못된 스윙을 용서해주지도 않는다. 캘러웨이 김홍식 마케팅 부장은 “도깨비 방망이는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최신 드라이버라고 해도 슬라이스를 만드는 심한 아웃사이드 스윙을 고쳐주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거리를 더 내고 싶다면 새로운 드라이버를 사는 것보다는 스윙 레슨을 받는 것이 옳다. 구력이 몇 년 된 골퍼라면 대부분 그 정도는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골퍼라면 “20야드 늘어난다”는 광고를 볼 때마다 솔깃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미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설명서 같은 복잡한 골프용품 업체의 드라이버 신기술 설명이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러 어려운 용어를 갖다 붙여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아무 변화도 없는 드라이버 비거리에 대한 통계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거리를 늘려주겠다는 광고엔 솔깃한다.

골프에서 거리는 이데아이고 골퍼들은 기본적으로 거리에 대한 속물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퍼팅은 돈, 드라이버는 쇼’라고 하지만 그건 프로들 얘기다. 주말 골퍼가 돈을 따려고 필드에 나가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잘 맞아 동반자들을 압도하는 호쾌한 드라이브샷 한 방, 우쭐한 그 손맛 때문에 연습장에 가고 필드에 갈 꿈을 꾼다.
‘정치인과 낚시꾼과 골퍼들은 다 거짓말쟁이’라는 말은 맞는 것 같다. 골퍼의 거짓말 중에는 ‘350야드 파4 홀에서 1온을 시켰다’ ‘550야드 파5 홀에서 2온을 했다’는 둥 거리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도박과 알코올과 이혼에 찌들어 폐인이 다 된 존 댈리가 아직도 온몸에 덕지덕지 광고를 달고 다니는 것도 골퍼들의 그런 속물근성 때문이다. 마릴린 먼로가 섹스 심벌이듯 댈리는 장타의 심벌이다.

게다가 드라이버는 어른들의 장난감이다. 골퍼들은 자동차는 매년 바꾸지 못하지만 봄이 올 때마다 드라이버를 바꾸면서 새로운 장타의 꿈을 꾼다.

가장 길며 헤드가 크고 파워의 상징인 드라이버가 성기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골퍼들이 유독 집착을 가지는 것일 수도 있다. 아이언을 어드레스하고 있을 때와 드라이버를 어드레스할 때를 상상해보라. 드라이버를 더 빛나고 더 비싸고 신형으로 하고 싶은 충동이 잠재의식 속에서 꿈틀거리지 않겠는가.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살아있다면 ‘아이언은 10년을 써도 상관없지만 드라이버는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할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매년 새로운 드라이버가 나오고 새로운 광고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 신문에도 새로운 드라이버에 대한 소식이 나간다. 기자도 새로운 드라이버에 대한 기사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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