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黨派가 오바마·매케인 돌풍의 주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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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12면

미 대선 민주당 예비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첫 1대1 TV 토론이 열린 지난달 31일 토론장인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의 TV 모니터 앞에서 양측 지지자들이 두 후보를 응원하고 있다.AP=연합뉴스

“아직 저에게 마음을 못 준 분은 손들어 보세요.”
(잠시 후) “하나, 둘, 셋--일곱 분이군요. 좋아요. 여러분이 마음을 정할 때까지 쭉 따라다닐 테니 기대하세요.(웃음)”

캐스팅보트 쥔 세력은

민주당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유세 말미에 늘 이런 설득전을 벌인다. 누구를 찍을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무당파(independent)를 잡기 위한 그만의 이벤트다. 2008년 미 대선의 가장 큰 화제인 ‘버락 오바마’ 돌풍엔 무당파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큰 몫을 했다.

오바마는 지난달 3일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무당파 유권자로부터 60%를 넘는 지지를 받아 힐러리를 무너뜨렸다.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오바마는 무당파로부터 40∼60%의 지지를 받아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앞서거나 대등한 득표를 올렸다.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1위를 달리는 데에도 무당파의 지지를 빼놓을 수 없다. 매케인은 8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공화당원들로부터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거의 비슷한 득표를 했다.

그러나 무당파로부터 3배나 많은 표를 얻어 승리했다. 19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매케인은 무당파로부터 42%의 지지를 얻어 승리의 기반을 잡았다. 그는 8년 전인 2000년에도 같은 지역에서 무당파 60%의 지지를 얻어 조지 W 부시 후보(당시)를 눌렀었다.
무당파의 힘은 5일의 수퍼 화요일에 더욱 뚜렷이 드러날 것으로 관측된다.

선거인단이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는 유권자의 19%인 300만 명이, 동부의 핵심주인 뉴저지주는 50%에 가까운 280만 명이 무당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투표 1~2일 전까지도 표심을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러다가 선거 당일 특정 주자에게 몰표를 던져 ‘태풍의 눈’이 되곤 한다. 매케인과 오바마를 보면 무당파의 성향이 읽힌다. 이들은 이라크전을 확실히 반대하거나(오바마), 강력히 지지(매케인)하는 소신파다. 의료보험 개혁, 지구 온난화 등에 명쾌한 행동을 촉구하며 당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무당파는 2억여 명의 미국 유권자 중 약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확한 숫자는 밝혀지지 않는다. 당적을 갖고 있다가도 경선 직전 당적을 포기하고 다른 당 후보를 찍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뉴햄프셔 같은 곳에선 투표장에서 특정 정당 후보를 찍은 뒤 출구에 설치된 ‘당적 포기’ 창구에서 바로 당적을 포기하고 무당파로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무당파는 정당의 당론이나 정부의 규제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미국 특유의 독립정신과 맞물려 있다. 자유주의에 기반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 특정 정당을 지지하더라도 대통령만큼은 정책과 인물에 따라 결정한다는 소신파가 많다.

1960년대부터 꾸준히 증가해온 이들은 부시 행정부 기간 중 특히 급증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라크전을 둘러싼 정부의 거짓말과 부패에 염증이 난 상당수 유권자들이 무당파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 특히 역전을 노려야 하는 주자들에게 무당파는 놓칠 수 없는 표밭인 셈이다. 하지만 무당파에 구애하는 건 양날의 칼이다. 초당적인 정책을 주장하다 전통적인 지지기반을 잃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공화당 성향의 무당파를 잡으려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찬양했다가 “민주당 후보 맞느냐”는 힐러리 진영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매케인 역시 공화당 주류가 싫어하는 정책들을 주장하다 “이단자”로 공격받고 자금난에 시달려야 했다.

잭 피트니 전 공화당 전국위원회 연구원은 “역대 미 대선에서 무당파가 그 자체로 키(key) 역할을 한 경우는 많지 않다”며 “그러나 이번처럼 1, 2위 주자 간에 초박빙 대결이 이어질 경우엔 무당파의 선택이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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