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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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민우가 다시 눈을 뜨자 어느덧 해가 중천에 걸려 있었다.간밤에 설친 잠의 몫을 낮은 톡톡히 받아간 것이었다.민우는 서둘러아파트를 나와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오늘은 동경대 도서관을 보러가기로 계획했던 것이다.민우는 주미리에게 권 유받기 전부터딱 한번은 일본을 가서 보고 싶었다.그것은 동경대 도서관을 보기 위해서였다.동경대 도서관을 가서 분위기나 사람들을 느껴보기만 하면 일본에 대해서는 대체로 파악할 수 있을 것같았다.이상하게도 일본에 대해서는 그 이상의 궁금증이 생기지 않았다.그들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민우는 관심이 없었다.그러나 신주쿠로 가 동경대 도서관을 찾던 민우는 곧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동경대 도서관은 별도로 있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단과대학별로 흩어져 있었던 것 이다.가까운데 약학대학 도서관이 있었지만 구태여 가고 싶진 않았다.대신 민우가 신주쿠에서 발견한 것은 화장실에 쓰인 「Kill the Korean」이라는 글자였다. 「미친 놈들…일본 놈들은 모두 다 정신병자라더니… 하는 짓이라곤…」.
민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케부쿠로로 가는 전철을 탔다.일본의 전철 안은 한국보다는 작고 아담한게 무슨 사랑방 같았다.나름대로 편리하게 만든다고 노력한 흔적은 보였으나 편리한 게 오히려 낡은 것으로 느껴졌다.민우가 일본에 와서 두 드러지게 느낀 것은 일본은 더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일본문화나 행정의 곳곳은 사람들의 본능적인 욕구를 섬세하게 충족시켜 주기는 하나 마치 계집애가 술시중 드는 것같아 편리하기만 할 뿐이다.그렇게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다가는 사람들은 그 계집애의 치마폭에서 떠나지 못한다.사람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욕구불만이다.특히 본능까지 위협받는 절박한 욕구불만이 있을 때 사람은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다.필요한 만큼의 적절한 욕구충족은 사람들을 조용하게 만들 어 통제하기는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그리고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조용하게 만드는 데도 한계가 있다.사람의 본성 자체가 자유를 지향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겉이 조용한 사람일수록 그 속은 적개심과 분 노로 들끓는다.착한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섭다고하지 않는가.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겉으로는 공손하고 수동적이면서도 속으로는 분노를 갈무리하고 있다.그것이 집단적으로 허용될때에는 잔인한 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민우는 한 구석을 차고 앉아 품안에서 꿈일기를 적은 메모지를 꺼냈다.지금 남의 나라 생각할 때가 아니다.내 문제부터 해결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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