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시 과감한 조직 혁신 … 계장 자리 28개 없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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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 농사를 짓는 정성현(48·김천시 구성면)씨는 지난달 28일 김천시 농업기술센터를 찾았다. 올해 저농약 사업을 협의하기 위해 시장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들른 김에 자두 농사 정보도 들었다.

지난해까지 정씨는 시청과 농업기술센터로 두 번씩 걸음을 하기 일쑤였다. 농사 정보는 농업기술센터에서, 관련 행정업무는 자동차로 20분을 가야 하는 시청 농축산과를 찾아야 했다. 정씨는 “농축산과가 농업기술센터로 통합되니 시간도 절약되고 이용도 쉬워졌다”고 말했다.

통합 과정에서 농산물유통계와 축산물유통계는 기능이 유사해 농축산물유통계 하나로 합쳐져 계장 한 자리가 없어졌다. 김천시청 종합민원실의 부동산관리계와 세무과의 토지관리계도 기능이 비슷해 종합민원실 부동산관리계 하나로 통합됐다. 토지관리계장 자리는 폐지됐다. 종합민원실 백남인(58) 과장은 “부동산 문제로 민원실을 찾는 시민들 대부분이 토지관리계가 맡던 공시지가를 필요로 해 멀리 떨어진 두 계를 통합했다”고 말했다.시민은 편리해지고 조직은 축소된 것이다.

김천시가 조직을 대대적으로 고쳤다. 1995년 김천시와 금릉군이 통합한 이후 처음이다. 사실상 60년대부터 내려온 조직의 전면적인 수술이다. 인구가 줄어든 데다 조직도 시민들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 밀착 행정을 편다며 자리를 만들어 조직이 비대해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규모 조직개편은 고통을 동반했다. 기초자치단체의 허리인 6급 계장 자리 28개가 한꺼번에 없어졌다. 시청 계장 자리는 올 들어 96개에서 82개로 줄고, 면사무소 계장 자리 56개는 42개로 축소됐다.

◇계장들의 수난=김천시 A면사무소 산업계장 B씨(50)는 1월 1일자로 계장에서 일반 직원으로 한 직급이 내려가 이웃 면사무소로 옮겼다. 또 15개 읍·면사무소의 호적계장 자리는 올해부터 호적이 가족부로 바뀌면서 모두 폐지됐다. 중앙정부의 지시로 급조됐던 혁신분권과 행정혁신 계장 두 자리도 혁신정책계장이란 이름 하나로 합쳐졌다.

김천시는 2006년 12월 한국산업개발연구원에 조직 진단을 의뢰했다.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조직을 전면 수술하기로 했다. 원칙은 시민 중심이었다. 유사한 부서는 하나로 묶고, 중앙정부가 지시해 만든 조직은 불필요하면 없애기로 했다. 조직 재정비로 28개 계장 자리를 줄일 수 있었다.

개편 방침이 알려지면서 직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부서 의견을 들으며 공청회를 열었다. 시민단체·농민단체 의견도 들었다. 시청 노조는 반대하고 나섰다. 시의회도 반대했다. 농민들은 10여 개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농축산과 폐지를 반대했다.

◇장기간에 걸친 추진=조정과 설득이 시작됐다. 김천시 한 곳에서 36년간 공직 생활을 한 박보생(57) 시장은 취임 직후부터 “어떤 부서는 늘 바쁘고 어떤 곳은 계속 느슨하다”고 말하곤 했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중앙정부가 틀을 세운 조직을 언제까지 유지하겠느냐”는 말도 했다. 그는 농축산과 폐지를 반대하는 농민들을 만나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

박 시장은 “나도 농고를 나왔고 지금도 농사 짓는 농군”이라며 “합치는 게 편리하다”고 설득했다. 김천시 오춘배(53) 노조위원장은 “계장 28명이 한꺼번에 보직을 박탈당한 것은 전국적으로 유례가 없는 변형된 구조조정”이라며 “새로운 시대 변화에 대응하려는 노력을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김천=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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