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이 털어놓은 ‘숨은 인재 찾기’ 한 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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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이름만 들어도 신물이 날 지경입니다.”

박영준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은 1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 기자실을 찾아 “한 달여간 무려 5000여 명의 인사 파일을 들여다봐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도와온 ‘하이 서울팀’의 맏형으로 지난해 말부터는 새 정부의 내각과 청와대 보좌진을 짜는 인선 작업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다.

‘인사 실세’ 박 팀장이 모습을 보이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인선 작업에 돌입한 뒤 한 달여간 바쁘기도 했지만 보안 유지를 위해 일부러 언론과 접촉을 피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팀장도 이날만큼은 힘겨웠던 인선 작업의 뒷얘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털어놨다. 인선 작업이 막판에 이르렀다는 증거다. 물론 그는 이날도 구체적 인선 내용에 대해선 함구했다.

우선 단기간에 강도 높은 ‘사람 공부’를 해야 했던 박 팀장은 “일주일에도 며칠씩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처에 머물며 일했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거의 매일 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1층에서 ‘4인방’과 함께 인사회의를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4인방은 유우익 대통령실장 내정자, 임태희 당선인 비서실장, 윤한홍 서울시 인사과장, 그리고 박 팀장이다.

5000여 명의 자료를 쌓아 놓고 ‘인력 풀’을 구성한 다음 문제는 검증과 안배였다고 한다. 이 중 검증에 대해 박 팀장은 “앞으론 ‘10년간 자료만 보자’는 식으로 한정해 검증할 필요가 있겠더라”며 “1970~80년대부터 장관 되려고 (깨끗하게) 산 사람이 많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처럼 개과천선한 사람도 있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은 젊은 시절 알코올 중독에 빠진 적이 있다. 따라서 박 팀장의 얘기는 막상 검증을 해 보니 자잘한 과거의 실수 때문에 문턱을 넘지 못한 후보가 많았다는 뜻이다.

출신 지역과 학교, 성별 등에 따른 자리 안배와 관련해서도 박 팀장은 “고차 함수를 푸는 것 같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우선 “광역시·도가 16개인데 장관은 13자리 아니냐”며 “지역만 고려해도 복잡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성별과 관련해서도 “한국 공무원 중 4급 이상 여성 공직자가 39명뿐이더라”며 여성 인재를 찾아 배치하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이 밖에 그는 출신 학교별 안배에 대해 “(이 당선인의 모교인) 고려대 출신들이 오히려 손해를 볼 것”이라며 웃었다. 마침 박 팀장도 고려대 출신이다.

이 자리에선 박 팀장이 어떤 자료를 바탕으로 인선 작업을 해 왔는지도 화제가 됐다. 그는 “중앙인사위원회와 BH(Blue House·청와대)에도 인사 자료가 있더라”며 “하지만 내용이 워낙 거칠어 사람을 보내 직접 알아봐야 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 안 되면 본인에게 직접 묻기도 했는데 어떤 이들은 ‘현재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입각을 사양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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