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일의 항명 … 청와대·교육부 ‘5년 코드’ 파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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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교육부총리는 지난달 30일 “법학교육위원회의 결정을 어떻게 손대느냐”며 “예정대로 31일 오전 공식 발표한다”고 말했다.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예비 인가를 심의한 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것이었다.

교육부 서남수 차관과 관련 실·국장들도 청와대로 찾아가 김 부총리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반응은 싸늘했다. “지역 균형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며 재론을 요청한 것이다.

정권 말기 로스쿨 지역 배분을 놓고 청와대와 교육부가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경남 지역에서 한 곳을 인가해야 한다”고 압박했고, 교육부는 “원칙이 깨진다”며 맞서고 있다. 교육부는 노무현 정부 5년간 철저히 코드를 맞췄다. 평준화 정책을 명분으로 대학에 내신 확대를 강요하고 특목고 설립 제한 강경조치를 했다. 하지만 로스쿨에서는 ‘배수진’을 쳤다. 끝까지 ‘예스’를 하다가는 정책의 신뢰도가 무너지고 새 정부에서도 입지가 좁아진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생존 논리의 충돌=청와대 관계자들은 28일 법학교육위원회의 예비 인가 결정을 접한 이후부터 일관된 입장을 보였다. ‘1개 광역시·도에 1개 로스쿨’ 원칙을 지켜 달라는 것이었다. 특히 경남에서 로스쿨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교육부 관계자들은 말했다. 경남은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이 있는 곳이다.

당황한 교육부 실·국장들은 29일 아제르바이잔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김신일 부총리를 기다렸다. 심의는 위원회가 하지만 최종 결정 권한은 부총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부처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주문대로 법학교육위원회의 원안을 건드려 1~2개 대학을 추가하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부총리는 장고 끝에 31일 오전 11시로 예정된 로스쿨 발표를 오후로 미뤘고, 다시 2월 4일로 연기했다. 김 부총리는 이날 오후 3시 실·국장들과 회의를 하고 “원안대로 간다”고 최종 결정했다. 2006년 9월 취임 이후 학자 시절 자율 경쟁 소신을 접고 임명권자의 코드만 맞춘다고 비난을 받아 왔던 김 부총리가 처음으로 버티기를 한 셈이다.

◇교육부의 ‘버티기’=교육부 서명범 대변인은 이날 오후 4시 공식 브리핑에서 “청와대의 이해를 구하려면 4일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위원회의 결정대로 갔으면 좋겠다는 게 우리 생각”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경남은 인구가 306만 명이 넘는 큰 곳인데 로스쿨이 빠진 것은 지역 간 균형에서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4일까지 교육부와 협의하겠다고도 했다.

교육부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교육부와 위원회가 재결정을 못하겠다는 입장인데 청와대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주문대로 경남에 로스쿨을 인가해 주면 다른 지방대 정원을 감축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교육부는 이날 기자들에게 심의 결과(대학명·배정 정원)까지 공개했다. “대학 반발을 무릅쓰고 청와대가 하려면 해보라”는 간접 항의를 한 셈이다. 법적으로도 법학교육위원회의 결정을 번복하기가 쉽지 않다. 로스쿨 설치·운영에 관한 특별법에는 교육부 장관은 위원회의 심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재의를 요구하려면 평가 결과가 현저하게 부당해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롭다.

◇대학 반발 확산= 고배를 든 동국대와 조선대는 청와대와 교육부를 항의 방문했다. 동국대 오영교 총장은 “지역균형 때문에 비교육적인 부당한 결정의 피해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조선대는 정보공개청구와 행정소송 등 모든 법적 대응을 하고, 법인이사진도 총 사퇴하기로 결의했다. 경남 지역의 영산대와 경상대는 ‘1개 광역시·도 1로스쿨’ 원칙에 마지막 희망을 거는 모습이었다. 영산대 부구욱 총장은 “강원대와 제주대가 지역균형으로 선정됐다면 경남 양산의 영산대가 제외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경상대 김종회 법대 학장은 “경남도와 진주 시민의 분노가 커 식당에 밥도 못 먹으러 갈 지경”이라고 반발했다.

강홍준·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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