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유산을찾아서>9.童男童女形 청자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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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92년10월 일본은 물론 세계의 유명 도자연구가들과 내로라하는 애호가들의 눈길은 오사카의 작은 미술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집중됐다.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은 오사카市 한가운데를 흐르는 요도가와(淀川)의 작은 모래섬 중지도(中之島)에 세워진 미술관으로서 평소에는 도자기만 1백40여점정도 상설전시하는 도자기 전문미술관이다.이곳에 시선이 쏠린 이유는 특별전 『고려청 자에의 유혹전』때문이었다.
『고려청자에의 유혹 특별전』은 이곳을 포함,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이 한두점씩 가지고 있는 소위 고려청자 명품만을 골라 1백60여점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였다.고려청자 전시로서는 가위 세기적 전시라는 찬사를 들을만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한국도자기컬렉션을 갖췄다는 이곳의 명성과 실력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이 미술관이 보여주려한 것은 단순히 세계적으로손꼽히는 고려청자명품만은 아니었다.한국도자기 전반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1백80도 완전히 바꿔보자는 것이 내심 이곳 큐레이터들이 노린 기획의도였다.
특히 이를 지휘한 이토 이쿠타로(伊藤旭太郎)관장은 민예적 아름다움으로 한국도자기를 감상하는 기존시각은 잘못됐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등 일본 민예운동가들이 한국문화의 아름다움과 특질을 최초로 외부에 알린 공로는 있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이나 단순미로서 한국도자기를 보는 시각은 전체의 일부분이었다는 생각이다.
말하자면 끝마무리를 대충한듯 약간 일그러진 도자기를 놓고 소박미.자연미란 말을 갖다대며 미완성의 아름다움이라고 치켜세웠지만 찌그러진 것은 찌그러진 것이고 미완성은 미완성일뿐 거기에서한 나라의 예술정신속에 이어흐르는 어떤 미술적 특징을 말할 수없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집약하는 미의식은 최고로 수준높은 공예품,즉 예술적 경지에 이른 걸작에서 확인되는데 이것을 민예품에서 찾으려는 것은 개인적 기호.취미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고려청자든 조선백자든 물론 거기에는 소박하고 단순한 아름다움도 들어있지만 그보다는 당시 사람들이 최고.최선을 지향했던 완벽한 기술과 솜씨,그리고 정교한 의장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토관장은 『고려청자는 2천년이 넘는 중국의 오랜 청자역사가만들어낸 송나라청자에 전혀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과 품격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이 오랜 시간.노력.
설득을 통해 전세계에서 모아온 고려자기 명품은 바로 그런 생각에 대한 예증자료였다.
이를 통해 고려청자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절대(絶對)세계를추구하는 중국자기나,집착이나 편집증세를 보이는 일본것과는 달리사람과 자연 사이의 결코 치우치지 않는 균형과 조화라는 특징이있음을 보여줬다.
고려청자의 완벽성에는 마치 작은 우주처럼 잘짜여진 질서와 통일감이 내재했다는 것이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던 고려청자의 참모습이었다.
이런 뜻으로 열린 전시에서 대표적 고려청자중 하나로 손꼽힌 작품이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의 청자동남동녀형연적(靑瓷童男童女形硯滴)이다.이 작은 청자연적 한쌍은 각각 11㎝의 앙증맞은 크기지만 고려적 아름다움이 넘쳐 흐르는 절품 (絶品)이란찬사를 듣는 작품이다.
고려시대 청자의 전성기였던 12세기에는 동물.과일등 형태를 모방한 청자가 많이 만들어졌으며 이 연적도 그중 하나였다.다만인물형태를 만든 예가 극히 드물어 더욱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오누이처럼 보이는 소년.소녀는 지물(持物)을 들고 부처님 앞에 공양드리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특히 소녀쪽 표현이 더욱뛰어난데 연꽃봉오리처럼 틀어올린 머리삿갓에 물을 부으면 손에 받쳐들고 있는 병주둥이로부터 물이 나오게 되어있 다.앞머리가 약간 흘러내린 소녀의 모습은 앳되고 귀여워 마치 불전에 처음나서 어리둥절한 어린 여동생이나 딸의 모습이 연상될 정도로 시선을 잡아끈다.실제 이 소녀상의 눈동자에는 화룡점정(畵龍點睛)하듯 살짝 철채(鐵彩)를 칠해 악센트를 주었다.손에 들고있는 정병이 무거운듯 조금 어색한 입모양을 지어 뺨이 도톰하게 부어있다.또 곧바로 세운 무릎까지 내려오는 겉옷과 병에는 머리털처럼가느다란 선을 음각으로 새겨 화려한 꽃문양과 함께 사실적 분위기를 물씬나게 한다.
종종머리를 튼 소년상은 왼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려 한층 의젓해 보이는데 이 연적은 바닥에 주입구가 있으며 손에 감싸고 안은 새의 주둥이로부터 물이 나오게 되어 있다.
옷에 문양이 없는 점이 소녀상과는 다르지만 시선을 끄는 부분에 철채를 칠하고 머리털같은 음각선으로 장식을 넣은 점등이 모두 똑같아 동일한 도공이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정양모(鄭良謨)국립중앙박물관장은 『순진한 어린 아기의 표정과삿갓쓴 표현등 고려청자 전성기에 절묘하게 인물을 나타낸 작품』이라며 『고려시대가 공예기술이 뛰어났던 시대임을 다시 한번 입증해주는 것들』이라고 평한다.
이 소년.소녀상은 원래 2차대전후 일본 제일의 도자기컬렉터로손꼽혔던 아타카 에이이치(安宅英一)가 모은 물건중 하나였다.
그가 회장이었던 당시 일본 9위의 종합상사 아타카산업이 파산하자 이 연적은 다른 물건들과 함께 청산회사로 넘어갔다.이 컬렉션의 행방에 대해 일본내에서 화제가 분분했는데 스미토모그룹이그룹내 21개회사가 모은 1백51억엔이란 거금을 오사카市에 컬렉션 구입자금으로 기부해 이 연적도 시소유로 이관하게 됐다.82년11월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이 세워진 뒤로 이 연적중 한점은 언제나 상설전시되며 이곳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 다음회는 고려불화 화엄정토변상도(華嚴淨土變相圖)입니다.
글 :尹哲圭기자 사진:金允澈기자.미술관제공 자문위원:정양모(鄭良謨) 국립중앙박물관장 안휘준(安輝濬) 서울대박물관장 홍윤식(洪潤植) 동국대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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