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없는 깊은 곳에 내가 있다 - 도보여행가 김지훈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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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여행을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길을 걷고 낯선 사람을 만나고 이국의 풍경을 관찰하며 그들의 문화에 젖은 채 반복되는 일상을 일시정지 시키는 것. 그런데 만약 오지에서 그 정지버튼을 누른다면 어떻게 될까? 십여 년 째 오지여행을 이어오고 있는 김지훈 씨(31)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WH 일반인은 선뜻 나서기 힘들 것 같은데요 오지 여행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김지훈(이하 김) - 대학 때 사찰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어요. 졸업할 즈음 되니까 유명 사찰은 거의 다 가 봤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찰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작고 초라한 곳들이 많더군요. 그렇게 산 속 깊은 곳이나 무인도 등을 드나들면서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외부와 크게 차단된 공간에 서 보니, 스스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아서 애를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 너무 답답하고 불안하더군요.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휴대전화 없이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나…. 존재하지도 않은 불행을 지레 짐작하고 쓸모없는 짜증을 남발하고. 내 자신이 허구의 세상 속에서 불행을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후로는 여행 장소를 쭉 오지 쪽으로 맞추고 있죠. 제 직업은 프로덕션의 수주로 영상물을 제작하는 것인데 일이 바빠 여행을 따로 못할 때는 일부러 외진 장소를 촬영지로 선택하기도 해요.

WH 주로 어떤 곳들을 여행하셨나요?

김 - 예전에는 강원도 산골짜기나 서해안의 무인도 그리고 중국 대륙의 이름 모를 시골 등을 여행했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국내 동호회 활동을 선호합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어쩐지 홀로 명상하며 걸어야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나이를 좀 더 먹고 보니까 나 홀로 여행 하는 것 보다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지여행은 지갑 두둑이 채워서 하는 관광여행과 달라서 동반자와 마음이 잘 맞지 않으면 신경이 쉽게 날카로워지고 트러블이 일어나기 십상이죠. 하지만 여행의 참 맛을 아는 사람들은 마음이 온화하고 배려가 몸에 배었기 때문에 문제 생길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들과 함께 여행길을 걷다보면 나 홀로 무작정 걷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어요. 도보여행의 길잡이 카페(http://cafe.daum.net/walkabouts)는 바로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오지 도보여행을 추진하고 있는 곳이에요. 사회생활이 바쁜 청장년층에서부터 은퇴 이후의 노년층 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도보여행 카페죠.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국내에 미지의 공간들이 아주 많아요. 인적 드문 시골이나 처음 올라가보는 산 그리고 때론 눈이 많이 와 차량이 봉쇄된 아스팔트도 오지여행의 장소가 될 수 있죠.

WH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든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곳인가요?

김 - 차별이 존재하지 않으니 기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자신과 잘 어울릴만한 동호회를 찾는 것이 뭣보다 중요한 일 같아요. 동호회마다 그 분위기가 천차별이거든요. 저는 어르신들과 동행하는 것을 좋아해요. 푸근함을 동경하죠. 하지만 좀 더 활기 있는 분위기를 원한다면 청년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을 가입해 어울리는 것이 좋겠죠? 열대림의 오지를 탐험하고 싶다면 그 방면을 꿰고 있는 전문가들과 어울려야 하고요. 각자의 구미에 맞게 잘 골라야 합니다.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생이 아닌 즐거움이니까요.

WH 다른 여행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오지여행만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김 -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얘기를 빌자면 ‘오지여행은 인류가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여행’이죠. 기존의 생활권을 벗어나서 새로운 곳에 발을 디뎌보는 것 그것은 한 개인에게 놀라울 만치 신선한 경험이며 그 신선함 속에서 자신의 배타성과 이기심을 발견해낸다면 인류는 평화롭게 조화를 이룰 수 있답니다. 오지여행은 다른 여행에 비해 대단히 많이 걸어야 합니다. 내가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것도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어요. 다른 여행들도 삶에 활력소가 되어 준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맥락이겠지만, 오지여행은 다른 여행들에 비해 인간을 좀 더 적극적으로 걷게 만들며 좋은 생각을 하게끔 유도합니다. 걸으면서 나쁜 생각을 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가볍게 걸으면 기분 전환이 되고 힘들게 걸으면 몸이 피곤하거든요.

WH 오지여행은 적극적인 사람들만 즐기는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바꿔 생각해보면 소극적인 사람이 오지여행을 통해 적극적인 성향으로 거듭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체력이 약한 사람들에겐 요원한 얘기일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 체력이 약하다고 해서 미리 차단하고 포기해버리는 건 옳지 않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길이 있거든요. 70세 이상의 오지여행 마니아도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런 분들도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으로 오지여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또 시간이 여의치 않은 도시인들을 배려해서 자동차를 이용한 오지여행도 만들어졌고요.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WH 올 겨울 오지여행 계획은 어떻게 세우셨는지요?

김 - 올 겨울에는 휴가를 좀 길게 잡아서 여러 동호회를 두루 경험해보고 싶네요. 지금 여행기록문을 작성중인데 내년 봄까지 정리해서 여러 회원들에게 나눠줄 생각입니다. 오지여행 관련 정보는 시중에 별로 없거든요. 제 보잘 것 없는 자료들이 아무쪼록 많은 여행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루하고 딱딱한 일상에 지쳤다면 오지여행에 한 번 도전해보세요.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해외 오지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이 카페를 추천한다. 남아메리카에서부터 인도, 네팔, 지중해,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여행 동선이 굵직한 것이 특징이다.

http://club.cyworld.com/ojitravel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도 함께 참가하여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다. 청년의 패기와 어르신들의 지혜가 어우러진 화목한 분위기.

http://cafe.daum.net/camping

*대한민국 오지여행 동호회로 마니아들이 많이 모여 있다.

http://ozikorea.com

*전국의 오지여행객과 야영객들이 만나는 곳이다.

http://cafe.naver.com/mcjoare

*국내외 캠핑 오지여행 카페.

http://cafe.naver.com/ozcamping

*4륜 구동차와 도보를 병행하는 오지여행의 재미도 색다를 것이다.

http://cafe.naver.com/opark

객원기자 설은영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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