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 총리 카드에 숨은 ‘정치 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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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이 그렇게 쓰면 그렇게 가는 거 아니에요?”

 한승수 유엔기후변화 특사는 25일 오전 1시쯤 집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이 “총리로 내정됐다는 통보를 당선인 측에서 받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이명박 정부의 첫 총리 인선을 놓고 하마평이 무성하게 나돈 지 한 달 만에 한 특사의 총리 기용이 가닥 잡히는 순간이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심대평 전 충남지사 등 정치인 총리에서 대학 총장 출신 총리 카드가 떴다가 지기를 여러 번. 이 당선인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글로벌 리더형 총리’는 한 특사로 정리된 셈이다.

 세계를 누비는 자원 외교 총리라는 컨셉트로 따졌을 때 한 특사의 상공부 장관·주미대사·외교부 장관·경제부총리·유엔총회 의장 이력은 이 당선인에게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한승수 카드’가 갖고 있는 정치 코드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를 이어줄 수 있는 인연의 끈이다.

 한 특사는 박 전 대표의 사촌 형부다. 고(故) 육영수 여사의 언니인 육인순씨가 한 특사의 장모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박 전 대표 캠프의 선거 운동에 직접 뛰어들진 않았지만 이런 이유로 성향은 ‘친박’(친 박근혜)이라는 게 주변의 평이다. 한 특사는 고 김진재 한나라당 의원과도 사돈지간이다. 생전의 김진재 의원은 박 전 대표와 가까운 사이였다.

 그래서 당내에선 “이 당선인의 선택에 박 전 대표 측을 배려하기 위한 뜻도 담긴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박 전 대표 측은 “한 특사가 특별히 친박이랄 수 있겠느냐”면서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한 특사가 연세대·강원도 출신이라는 점도 강점이다. 장관 직에 고려대 인맥이나 영남 출신 인사들을 쓰는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당선인 측에 따르면 이 당선인이 고려대 출신이다 보니 고려대 출신 인사들을 요직에 기용하는 데 오히려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총리가 연세대 출신이면 선택 폭이 넓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한 특사의 부인 홍소자씨가 고려대 여자교우회장을 맡고 있어 고려대 결속 효과도 작지 않다. 결과적으로 다목적 카드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한 특사는 이날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세계 물 위원회 30차 이사회에서, 그리고 이날 두 차례에 걸쳐 방배동 집에서 그를 기다리던 기자들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통보 받았나.

 “공식 발표 뒤에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선인이 자원 외교를 강조했는데.

 “맞다. 중국을 봐라. 중동이 아니라 심지어 아프리카에도 간다. 장기적으로 10년 뒤, 20년 뒤를 보고 가는 거다.”

 -자원 외교 한다고 총리가 나라 밖으로만 돌면 총리직이 위축되지 않을까.

 “조직보다 퍼스낼러티(사람됨)가 중요하다. 누가 맡는가가 중요하다.”

 -당선인이 실용주의를 강조한다.

 “현 (노무현)정부를 보면 이념 중심으로 얽매이니 사람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실용주의가 필요하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도 있지 않나. 실용주의도 좋은데 창조적이라는 말이 붙었으니 얼마나 더 좋겠나.”

 -국무총리를 하게 되면 주요 정무직은 다 맡게 된다.

 “ 일을 하며 부하직원에 대한 신상필벌을 확실히 했고 부하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일각에서 국보위 참여 전력을 얘기한다.

 “억울한 측면이 있다. 국보위 비상사태대책위 재무분과에 있었다. 입법의원은 아니었다.”

신용호·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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