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도 3.1운동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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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원의 불길처럼 국내외로 번졌던 3.1운동은 중국 동북부 각지방에서도 조선인 10여만명과 중국인까지 합세한 가운데 한달반여동안 계속됐고 시위를 하던 조선인 25명이 일본군에 사살 또는 암매장되고 수백명이 부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
〈관계기사 18面〉 특히 이 지역의 3.1운동은 연변 용정시에 사는 한 상인이 1919년 2월 서울에서 입수한 독립선언서를 상품속에 숨겨 갖고 들어가 조선인 중학교에 전달,학생들이 이를 프린트해 비밀리에 연변 각지에 배포한 것이 도화선(導火線)이 됐 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요령성 신빈현(新賓縣)당사(黨史)판공실 연구원조문기(曺文奇.52.중국인)씨가 중국공산당헌.조선족 기록.당시중국신문 기사.생존 조선인들의 증언등을 토대로 작성한「중국 동북의 조선족과 3.1운동」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중국 요령일보(遼寧日報.요령성 심양시 소재)가 단독 입수해 28일 中央日報에제공,밝혀졌다.
길림성.요령성.흑룡강성등 중국 동북지역 조선인들의 3.1운동발발시기와 동기.규모.특징등이 중국측의 문헌과 자료에 근거해 밝혀졌다는 점에서 국외 3.1운동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金局厚기자〉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서 3.1집회를 갖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3월12일부터 4월말까지 용정.훈춘.안도.화룡.왕청.연길.봉천(심양).장백.류하.집안.환인.관전.통화.안동(단동).하르빈등 동북 3省 조선인 집 단 거주지에서 주변 일대 조선인 8만여가구가 일제히 태극기를 내걸었고,80세 노인에서 7,8세 어린이까지 모두 2만여명이 용정에서 집회를 가진뒤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훈춘현에서는 3월20일부터 28일까지 연일 4천~2천여명의조선인들이 집결,독립만세를 부르며 격렬한 시위를 했고 수업을 중단하고 시위를 주도하던 2명은 그자리에서 살해되고 김하정은 압속과정에서 생매장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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