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있는풍경>충북 제천 박치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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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봄을 시샘하는듯 뒤늦은 눈발이 천등산 고갯길을 가로막아도 봄소식은 이미 그 너머 마을에 당도해 있었다.좁은 밭둑길을 따라간 들판 한 가운데서 파아란 새싹은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봄을 키워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땅을 믿는다』는 박치환(朴稚丸.47.충북제천시백운면화당2리)씨 부부는 생명이 약동하는 봄을 이미 몇달전부터 준비해 왔다.그는 종자를 키워내는 사람이다.은빛 터널같은 그의 채종포(採種圃.비닐하우스)에서는 올해 무.고추 농 사의 밑거름이 될 혈통 좋은 씨앗작물들이 쑥쑥자라 키자랑을 하고 있었다.
경기도 이천에서 소년기의 가난을 떨어버리기 위해 서울로 무작정 상경,23년간 운전수로 거리를 누볐던 그는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되살리기 위해 84년 겨울 다시 「땅의 품」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집만은 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쉴새없이 자신을 혹사,집장만은 했지만 더이상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할수 없이 전국지도를 한장 사서 탐색한 후 점 찍은 곳이 현재의백운면.박달재 못미쳐 물과 자연이 좋아 단박에 가 슴속이 시원해 지는 곳이었다.
「신출내기 농사꾼」이 귀동냥으로 얻은 농사지식은 잘 먹히지 않았다. 작물 대신 산에 염소.개를 놓아 기르면서 외부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마을 사람들을 익혀나갔다.관계를 돈독히 하는데는 평소 칭찬을 들어온 손재주가 한 몫 했다.농기구등 고장난 물건들을 고쳐주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져 갔다.그가 하 는 일에 대한 이웃의 조언과 도움도 늘어 갔고,염소새끼를 팔아 땅뙈기도 조금씩 늘려갔다.
그가 가장 자랑으로 삼는 것은 「뜨내기」인 자신에게 재작년 마을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이장을 맡겼었던 일이다.믿음 없이는 이장자리가 좀처럼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염소도 팔고 농협에서 돈도 빌려 이제 5천평의 땅을 갖게 됐고,지난해 총공사비 4천여만원을 들여 초록색 지붕을 한 아담하고 예쁜 벽돌집도 갖게 됐다.
그가 올들어 좋은 씨앗을 만들어 달라고 종묘상으로부터 종자를받아 계약재배로 무.배추씨를 키우게 된 것도 이장이었던 그를 농협에서 추천했기 때문.3천평의 땅에 3㎏의 무씨를 뿌려 재배하면 6월께 4백㎏의 무씨를 수확하게되고 ㎏당 1만3천원씩을 받을 수 있으니 올해 농사는 기대가 앞선다.『서울에서 계속 살았으면 벌써 죽었을 겁니다.그만큼 몸이 피폐해 졌었으니까요.시골에 와 냉장고에 늘 먹을 것을 충분히 채울 정도로 돈은 못 벌었지만 사람들은 내가 부자가 된 줄 알아요.』 그는 마음만은이제 누구 못지 않은 부자라고 말한다.
벌써 날이 따뜻해지면 집앞 개울에서 쏘가리를 낚아 마을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매운탕을 끓여 먹어야지 하고 기다려지는 것만봐도 그렇다는 것.
〈끝〉 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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