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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단상>캐주얼 개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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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성들이 옷을 사지 않는다」고 하면 의류업체들은 빙그레 웃었다.「그 변덕이 얼마나 가겠느냐」는 투였다.하기야 얼마 못가여성들은 참았던 갈증을 풀기라도 하듯 이것 저것 다시 사들이게마련이었다.
60년대의 미니스커트,70년대의 나팔바지,80년대의 벌어진 어깨정장등 「시대의 유행」앞에 여성들은 잘도 순종했다.석유파동이나 전쟁등 정치불안에도 의류만은 끄떡없었다.「영원한 산업」으로 불릴 만도 했다.
90년대들어「유행의 여신(女神)」이「헐렁한 캐주얼」속에 묻히면서 미국의 의류판매가 장기침체로 빠져들고 있다.「허술한 망나니」풍의 92년 가을컬렉션이 선보인 이후 이렇다 할 유행도 없어졌다.「변덕」에 따른 일시적 가뭄이 아니고 「사 회적 변화가의류산업에 가져오는 항구적 가뭄」이라는 점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우선 사회의 「캐주얼 바람」(go casual)이다.가장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기업 IBM마저 근무복장 규정을 폐지했다.
「캐주얼 금요일」의 직장은 날로 늘고 있다.유행이 따로 없고,특징과 개성을 살려 있는대로 걸치면 그만이다.
의류구입에 결정권을 가진 여성들은 직장및 집안일로 쇼핑할 시간이 많지 않다.활동하기에 편한 옷이 첫째고 유행은 갈수록 부차적이다.자동차.가재도구등의 월부금 지출은 갈수록 많아진다.의류지출예산이 압박을 받을수록 옷의 가격과 실용가치 에 더욱 민감해진다.
원래의 샤넬 백은 수천달러를 호가한다.그러나 샤넬 풍의 백과지갑은 싼 값에 얼마든지 있다.2년후면 구식(舊式)이 될 「흘러가는 제품」에 비싼 돈을 들일 이유가 없다는 인식들이다.기존의 유행제품이 뜸해지면 새로운 유행의 창출로 돌 파구를 부단히열어가는 것이 패션의류산업의 생존양식이다.「캐주얼 바람」은 이순환을 거부하는 反유행의식이다.「유행은 곧 시대에 뒤진 것」(Fashion is unfashionable)이라는 기발한 반어(反語)도 등장했다.캐주얼 바람 으로 남성용 캐주얼 판매는 득을 본다.남성들은 보통 주중의 근무용 정장에다 주말용 잠바및진바지류의 양극단이다.출근용 캐주얼등 그 중간 것을 마련해야 한다.문제는 전체산업의 운명이 걸려있는 여성의류 판매가 해마다줄고 있는 점이라고 한다.제조및 유통도 문제다.판매업소가 너무많아 물건을 골고루 공급하다 보면 전체로는 항상 과잉생산이다.
유행을 타는 시점에서 제품은 과다재고가 된다.잦은 바겐세일도 이 때문이다.유행의 부재(不在),또 유행에의 거부는 곧 개성의시 대다.
〈本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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