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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具滋暻 LG회장 은퇴회견대담=金元泰 산업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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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구자경(具滋暻)LG그룹 회장(70)이 22일 맏아들 구본무(具本茂)부회장(50)에게 그룹총수 자리를 물려준다.20일 오전에는 그룹회장으로서는 마지막으로 「그룹경영이념선포 5주년 기념행사」를 주재했다.아직 체력이 왕성한데도 경영환경 이 급변하는시기에 회장직 승계에 나서게 된 그는 요즘 지나온 나날에 대한감회가 깊고 하고 싶은 말도 많다.
中央日報 김원태(金元泰)산업부장이 19일 具회장을 그의 주말휴식처인 충남천안군성환읍의 「연암(蓮庵)축산원예전문대」 실습농장에서 만났다.은퇴를 앞두고 45년간의 기업경영활동과 25년간의 그룹회장재임기간을 돌아보는 심경,「백전노장」 (百戰老將)경영인이 보는 요즘의 각계 모습등을 화제로 2시간남짓 가졌던 대담을 그대로 옮긴다.취재진의 사전예고 없는 방문을 받은 具회장은 점심을 막 끝내고 꽁초 담배를 피워물던 참이었다.허름한 검정색 바지와 점퍼차림에 낡은 구두를 신고 걸어나오는 具회장은 듣던대로 소탈한 모습 그대로였다.
-예고도 없이 찾아와 휴식시간을 빼앗게 돼 죄송합니다.아직도입맛이 당기면 밥 두그릇은 거뜬히 비우신다고 들었습니다.건강은어떠신지요.
『식성 좋기로는 최종현(崔鍾賢)선경회장한테는 안되요(웃음).
생활하는데 불편은 전혀 없습니다.혈압등 모두가 정상입니다.』 -활동력이 왕성하시고 그룹경영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인데 승계가혹 이르진 않습니까.
『미리 미리 준비해야지요.선친(具仁會)이 지난 69년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그룹을 맡게 됐을 때 받았던 당혹감은,생각해보면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당시 저는 부산에서 교육(본격적인 경영수업)받으러 서울로 올라온지 3년째로 「훈련」도 제대로 못받은 상태였어요.다행히 연배가 위인 삼촌들 도움으로 꾸려가긴 했지요.』 -지난 50년 락희화학이사로 회사에 첫발을 내디딘뒤 45년이 지난 시점에서 볼때 언제가 가장 어려우셨습니까. 『80년대말 노조파업이 일어났을 때였습니다.민주화물결을 탄 것이긴 했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도 없이 고통스러웠어요.거기다 87년 2월엔 전경련회장 일도 맡은 터여서 경황이 없었어요.회사가 망하는 줄 알았습니다.당장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중점 대응해 연구하고구상한 것이 21세기 경영구상.자율경영입니다.3년쯤 하니까 효과가 보이고 5년쯤 지나니까 노조도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거지요.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때 제시했던LG의 경영이념과 자율경영이 어떤 점에서 효과가 있었습니까.
『처음의 자율경영은 말하자면,임직원에게 사업을 나눠주는 겁니다.알아서 책임지고 해보라,수출이나 국내시판은 회사가 맡아줄테니까 경영권을 갖고 해보라고 한 거지요.48개 계열사를 비슷한사업환경의 20개 사업문화 단위(CU)로 묶어 C U長 지휘아래 움직이게 자율경영을 시도했지요.
종래의 경영이념중 첫째항이었던 인화.단결을 「인간존중」으로,둘째.셋째항인 개척정신.연구개발은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로 각각 바꿔 오늘에 이른 겁니다.인간존중의 이념은 자칫,사람을 한없이 느슨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때문에 신상필벌 (信賞必罰)을 원칙으로 했어요.』 -LG그룹의 자율경영은 계속 확대,추진되는 겁니까.
『그룹 총수는 배우와 같습니다.밑의 참모.임직원은 시나리오를작성하는 감독.연출자이죠.배우는 그들이 전략과 일정을 짜면 시간에 맞춰 무대에 나가 연기 활동을 하는 것이지요.배우가 다 하려들면 연출자가 할 일도 없게 되고 되는게 하나 도 없어요.
배우는 그러나 무대 출연할 일이 너무 많아 피곤하지요.내가 총수를 승계한 또 다른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경영혁신의 승패는 높은 사람 순서로 먼저 변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CU長이 모범적으로 만사에 앞장서야 하는데 그러다보면,사람이 현실적으로 피곤해서 못살아요.제대로 하려면 피곤하니까 권한을 자꾸 밑으로 물려줘야지요.그래야 회사도,임직원도,나라경제도 잘 됩니다.』 -그러면,LG의 미래 모습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具부회장에게)15년 이상(그룹회장직 수행을)하지말라고 했습니다.그때 가면 LG에는 전문 경영인이 나올 겁니다.具씨가 더이상 오너도 아니게 됩니다.회장(오너 총수)은 심적으로,육체적으로 힘들어 한계에 부닥치게되므로 10년,15년 이상 할 게못됩니다.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부응하자면 몸과 마음이 너무 바빠운동할 시간도 없어져 건강을 더욱 해치게됩니다.』 -이취임식 때 1,2세 원로들은 경영일선에서 퇴진한다는 얘기가 들리는데요. 『나보다 연배가 높은 분도 있고 비슷하거나 낮은 분도 있어요.만 65세이상은 물러나자고 함께 결의를 했습니다.「회장 정년(停年)」을 둔거지요.결의는 이미 3년전에 했고 이번에(3世경영 출범때)가시화된 겁니다.사장도 63세가 정년입니 다.』 -3世경영 체제를 여는 새 회장은 「공격적인 경영」을 구사할 것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그건 그 사람한테 물어야지요(너털웃음).』 -LG그룹의 경영스타일이 보수적이고 특히 신규사업진출등에서 다소 소극적이라는그룹 안팎의 지적이 없지 않은데요.
『저는 LG그룹이 소극적이거나 보수적인 기업이라고 보지 않습니다.그랬으면 어떻게 재계 3위 위치를 점하고 2위자리를 넘볼수 있었겠습니까.자율경영등 경영혁신도 우리가 제일 먼저 했어요.생산현장에서의 각종 혁신바람도 LG가 선도한 게 많습니다.』-LG에는 具씨와 許씨 양가 친인척이 임직원으로 널리 포진하고있어 진취적 경영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일부 지적도 있습니다.
이취임식때 허창수(許昌秀)LG산전 부사장이 許씨 일가의 대표주자로 허준구(許準九)LG전선회장 후임으로 오른 다는 추측도 있고요. 『(허창수 부사장을 LG전선의)회장에 추대키로 했습니다.許씨 일가는 LG를 같이 창업한 영원한 동반자입니다.양가의 임직원은 서로 정도(正道)를 걸어가기 때문에 경영권이 분산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룹 회장에 오를 구본무 부회장과 LG전선 회장이 될 허창수부사장을 어떻게 보십니까.
『두 사람 모두(경영)수업을 두루 받았어요.신중하게 잘 할 겁니다.』 -숱한 인재를 뽑아 키우셨을텐데,사람을 보는 원칙은무엇이었습니까.
『일류대 출신들 가운데 권위의식만 있고 솔선수범을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반대로,소위 2~3류 대학출신자가 앞장서는 사례가 많습니다.요컨대 먼저 많이 변하는데 앞장서는 사람입니다.권위주의는 절대로 안됩니다.이같은 문화를 장 려하고 정착하는데 4~5년 걸렸어요.』 -具회장의 용인술(用人術)은 독특한 면이 있다는 평이 있는데요.
『칭찬을 많이 하고,차별을 하지 않는 겁니다.』 -요즘 젊은직장인,소위 신세대에게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인재 충분히 확보 『무엇이 되겠다는 포부가 없이,월급 주는대로 그냥 받고 쉽게 사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가치관이확립돼 있지 않은 거죠.인내심도 부족한 것 같고요.좀 해보다 안되면 그냥 포기해버립니다.집이나 학교에서 배우질 않았는지,도덕이나 예 의범절등 기본교육도 부족해요.기업체에 들어와서도 그런 습관들이 그대로 보이는데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난해 2월,신입사원 특강자리에서「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셨는데 제대로 돼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복지와 인재양성은 우리 그룹의 중요한 이념입니다.지난 3년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으로 LG의 주요 계열사 연구소들은 다행히 일류 인력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봅니다.학계에서도 인재가 우리 그룹에 많이 모여드는 점을 주시하고 관심도 큽 니다.』 -사회공익 활동이나 사회로의 이익환원에 LG는 최근 적극적이던데요. 『대학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해마다 교수 30명에게 2년 코스의 해외유학이나 연수를 가족과 함께 경비일체를 지원해서 보냅니다.또 전국 시.군별로 탁아소.유치원.양로원.컴퓨터 교육실 등을 설치,기증해오고 있습니다.』 -역시 사회공익 활동의 성격이 강한 연세의료원과의 대형 의료센터 건립도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는지요.
『현대.대우.삼성 등 상위 몇개 그룹들이 모두 대형병원을 갖고 있는데 우리만 없어 몇년전부터 생각해왔었어요.기업의 공익활동에도 잘 맞는 사업이고요.임직원들의 사기문제도 관련됩니다.마침 세브란스(연세의료원)가 1천개의 병상(病床)규모 의료센터를신촌 병원에 세우는데 자금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고 함께 세우기로 했어요.독자적으로 세우는데는 우수한 의사가 부족해어렵습니다.4년동안 총 4천억원을 들여 난치병 등 고난도(高難度) 질병치료 전문 의료센터를 세우 기로 한 것입니다.
또 LG화학이 2000년까지 충남 대덕에「고등기술연구원」을 세우는 계획과 연계해 4세대 항생제나 에이즈 치료제등 신약(新藥)연구 등을 산학협력 과제로 연세의료원과 추진할 겁니다.』 -최근 정부의 기업정책에 대해 느끼시는 점은 없습니까.전경련회장도 지내신 경험이 있으시니까요.
***오너 결국 사라져 『외국기업은 덩치가 아무리 커도 세분화하는 추세인데 우리의 경우 요즘 기업을 자꾸 떼내거나 통합하게(정부가) 유도합니다.잘 되는 회사와 잘 안되는 회사를 합쳐놓으면 함께 안되는 분위기로 물들어버립니다.「까마귀 있는 곳에백로야 가 지마라」는 말도 있잖습니까.물론 외국기업에 비해 우리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자율경영이 부족해 아직도 배울 점은많습니다.그러나 일본기업의 경우 오너가 자기 소유지분을 포기하는데 1백년 가까이 걸린데 비해 우리 기업은 「정미소 수준 」에서 탈피한지 30~50년도 안되므로 좀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오너가 지분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증자를거듭하면서 자본규모를 늘리게 되고 따라서 소유주는 자기지분을 계속 팔게 돼 나중에는 경영권을 완전히 포기하 는 경우도 많아집니다.우리도 머지않아 오너가 사라지는 기업들이 나타날 겁니다.』 -최근 경기문제를 둘러싸고 재계와 정부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문민정부이므로 전경련 회장이 취임사에서 한 말을 갖고 오랫동안 과민하지는 않을듯 합니다.』 -LG가 앞으로 주력할 사업은 어떤 분야지요.
『전자의 멀티미디어 분야가 대표적입니다.LG전자는 벌써 일본과 동시 출하할 정도의 기술수준으로 도약한 품목이 꽤 있습니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무슨 일로 소일할 계획인지요.
『당장 23일부터 여기저기 다니려 합니다.외부정보나 듣고,「심부름」이나 하면서 사무실에 간혹 나가 조언정도는 가끔씩 해야겠지요.(새회장의)참모들이 있으므로 「충고」는 아닙니다.골프를요즘 잘 안쳤더니 핸디 18에서 30수준으로 떨 어졌습니다.골프는 한 주에 두번만 하고 평생 제대로 못해 봤던 섬이나 명산.산사등을 찾아 국내여행이나 다녀볼까 합니다.』 〈정리=李重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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