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비준’ 정부·국회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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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현 정권과 국회는 단 한 가지라도 국민 전체를 위해 일궈낸 업적이 있는가. 이제 마지막 순간에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2월 임시국회에서 비준 동의함으로써 협정발효를 위한 준비를 마무리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남겨진 기회인 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경제는 끊임없이 국제화(international)를 원하는데, 우리 정치는 가장 국지화(local)를 지향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4월 총선이다. 일단 본격적인 선거정국에 돌입하면, FTA로 인한 피해산업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은 비준 반대의 목청을 높일 것이다.

더구나 FTA 최대 수혜집단 중 하나인 수출기업의 노동자마저 비준 반대운동을 통해 노동운동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려 들 것이다.

 한·미 FTA 비준 문제는 협상 타결 당시처럼 또다시 집단이기주의적인 정치적 흥행의 카드로 활용될 것이다. 결국 우리 경제가 염원하는 한·미 FTA 비준은 현 정부와 국회에서 이뤄지지 못하고, 차기 정부와 국회로 넘어가서 새로운 논쟁의 불씨를 지피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시나리오는 개방과 경쟁의 기조 위에서 효율적 경제운영의 청사진을 제시한 새 정부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수출 기업과 소비자들은 수출과 소비효율 증대라는 기대이익을 상실할 것이고,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의 증가로 인한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유럽연합(EU)·캐나다·인도 등과의 FTA 협상에서 우리가 한·미 FTA 비준으로 인해 기대할 수 있는 협상력 제고의 효과도 상실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측이 먼저 비준함으로써 미국에 비준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진다.

 올 하반기에 대선과 총선을 앞둔 미국의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미국 측이 비준을 달성할 수 있는 적기는 올 상반기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같은 강자와의 게임일수록 상대방 코트에 공을 먼저 넘겨서 그쪽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를 미리 줄이는 것이 약자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모든 국내 정당이 연합해 초당적인 차원에서 2월 임시국회에서의 FTA 비준을 확고한 당론으로 정하고 반대세력에 적극적인 설득과 압력을 가해야 한다. 우리 경제 미래의 틀을 좌우할 한·미 FTA 비준은 집단이기주의 차원에서 다뤄질 이슈가 아니라는 여론을 확산해 이들로 하여금 전향적인 정치적 결단을 내리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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