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한일관 70년 만에 문 닫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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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일관 창업자 신우경 할머니가 1957년 청진동에 세운 3층짜리 새 한일관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건물은 두 번의 리모델링만 거친 채 지금까지 유지됐다. 오른쪽 사진은 74년 새롭게 리모델링한 한일관 현재의 모습. 청진동 일대가 올 하반기부터 재개발돼 5월 말까지만 영업한다. [사진=김형수 기자, 한일관 제공]

 매년 1월 1일 서울시장을 비롯해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치고 난 인사들이 항상 들러 떡국을 먹는 식당이 있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 119의 1번지 ‘한일관’이다. 70년간 종로 ‘피맛골’ 입구를 지켜온 이 식당이 사라지게 됐다.

한일관 공동대표 김은숙(47)씨는 17일 “청진동 일대가 올 하반기부터 재개발돼 5월 말까지만 영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외할머니인 고(故) 신우경씨는 1939년 종로에 ‘화선옥’이란 식당을 열었다. 초창기 주 메뉴는 장국밥과 너비아니였다. 경기도 출신인 신씨는 원래 궁중음식인 너비아니를 일반인에게 선보였다.

그는 45년 해방 직후 ‘대한민국에서 으뜸가는 식당’이란 뜻으로 식당 간판을 한일관으로 바꿔달았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피란갔다 돌아온 57년 지금 위치에 건물을 새로 지었다.

 70년대 초반까지 한일관은 서울에서 가장 큰 한식당이었다. 일제 때는 조선총독부 직원도 많이 이용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이곳 단골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청와대 음식이 신통치 않다”며 한일관 조리사들을 청와대로 불러 음식을 만들게 했다. 김은숙씨는 “박 전 대통령은 된장찌개·만두 같은 소박한 메뉴를 즐겼다”고 전했다.

36년째 건물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김택수(67)씨는 “한번은 중앙정보부장이 왔기에 특히 신경 써 음식을 내갔는데 ‘왜 보리 혼식을 하지 않느냐’며 영업정지를 하겠다고 해 혼난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한일관을 자주 찾았다. 당시 경호실 직원들은 대통령이 오기 몇 시간 전부터 주방과 홀을 뒤졌다고 한다. 경호원이 미리 음식을 먹어 검사를 하는 ‘기미’를 했다고 식당 관계자들은 기억했다.

 김영삼(YS)·김대중(DJ) 두 전 대통령은 야당 총재 시절 상도동·동교동계 정치인들을 이끌고 이곳을 찾았다. 김은숙씨는 “YS가 방문할 때는 영남 출신 식당 직원들이, DJ가 찾을 땐 호남 출신 직원들의 접대 태도가 남달랐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육개장을 맛있게 먹어 직원 사이에 ‘노무현 육개장’이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고 한다.

 주먹으로 종로를 호령한 김두한도 이곳 음식을 즐겼다. 한번은 음식을 먹다가 가시가 나와 부하들이 험악한 분위기를 만든 적도 있었다. 종업원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는데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김두한의 한마디로 무마됐다 한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도 단골이다. 정 회장은 현대차 사옥이 양재동으로 옮긴 뒤에도 가끔 직원을 시켜 배달을 시킨다고 한다.

 78년 신우경씨가 작고한 후 한일관은 딸 길순정씨가 이어받았다. 97년 길씨가 세상을 뜨자 길씨의 딸 김은숙·김이숙씨가 3대(代) 경영자가 됐다. 프랑스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강단에 섰던 은숙씨는 교직을 포기하고 식당 운영에 나섰다.

김씨는 “서울 강남에 분점을 내 영업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이충형·정선언 기자 ,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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