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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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것은 요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있다고 했다.
등골이 오싹했다.
『빼어난 미모에다 일본말에도 능통했대.그러니 총독부 고관들이더 오금을 못썼겠지.』 지금껏 살았으면 여든은 넘었을 것이라니스무남은에 죽었다는 계산이 추려진다.그처럼 젊어서 세상을 여읜것은 일본 관헌(官憲)이 그녀의 생식기를 도려내 보관한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괴이한 일이다.
이웃 한약방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약주를 나누며 한 얘기를 길례는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
『종로 3정목(요즘의 3가)에 있었지.아마 8백평은 됐을 걸세.경기.서도.남도 여러 곳에서 모인 기생이 밤마다 1백50명이나 나온다고들 했네.휘황했지.』 약방 할아버지는 명월관(明月館)의 옛모습을 아버지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약재 사러 종로로 심부름 나갔다 돌아오는 초저녁엔 일부러 명월관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한다.「산호잠 밀화비녀 이리 꽂고 저리 꽂고,은조사 화갑사 긴 치마를 허리 졸라 동여 입고」그림같이 나타나는 기생 구경을 하기 위해서 였다.
『그 시절엔 시간당으로 화대(花代)를 주었는데,마음 내키면 정해진 화대 외에 몇시간분을 더 얹어 주기도 했다더군.함경북도에 크게 공장을 차린 일본 갑부가 어떤 기생한테 1천시간분의 화대를 더 얹어줬다는 유명한 얘기도 있었지.유창한 일본말에 반해 준 화대였다네.』 그 기생이 바로 친구가 말한 명기(名器)의 임자였을까.
하지만 명기란 정말 존재하는가.
의외로 허상(虛像)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교로 과장하거나 투여가치로 포장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남녀 명기의 실상(實像)일 수도 있다.
섹스 비법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몇십가지 체위라거니,몇십가지테크닉이라거니 해도 실현성이 별로 없는 경우가 태반이 아닌가.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길례는 한약방집 아주머니로부터 희한한 선물을 받았었다.
춘화도(春畵圖)였다.
원앙침 베갯모 크기의 세초(細초)에 그려진 열두장의 민화로,갖가지 체위의 남녀가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었다.주로 한량과 기생,머슴과 여종의 모습.더러 문틈으로 엿보는 얼굴도 그려넣어져있었다. 어머니 없이 자란 길례에게 이웃 아주머니가 베푼 무언의 「성교육」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에는 억지나 과장이 많아 그저 호기심으로 보고 넘겼을 뿐이다.
진실로 쾌감을 주는 것은 명기도,비법도 아닌 「사랑」임을 길례는 중년 나이 고비에 사랑함으로써 깨달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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