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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프로야구 ① 야구단의 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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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KT가 팀 창단 계획을 번복하면서 국내 프로야구단의 사업성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구단마다 차이는 있지만 홍보효과 등을 제외하고 연간 100억∼200원 정도씩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야구단 매각 실패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무능한 협상력 때문이라는 내부 비판이 많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야구가 돈 되는 사업이 아니다”는 냉정한 평가를 시장으로부터 받았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국내 프로스포츠 중 가장 많은 400만 관중을 확보한 프로야구가 고부가 콘텐트 산업으로 탈바꿈하려면 말뿐인 홍보효과 대신 수익과 비전을 찾아내야 한다. 한국 프로야구가 사는 길을 시리즈를 통해 알아본다.

 돈벌이를 위한 스포츠 마케팅인가, 아니면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인가.

 한국 프로야구의 돈줄 역할을 해온 대기업들이 기로에 섰다. KT 프로야구단 창단 번복 과정에서 이런 정체성 혼돈이 여실히 드러났다. KT가 프로야구단 창단을 포기한 것은 무엇보다 투자 대비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1일 창단 계획을 백지화하면서 “IP TV·와이브로 같은 새 성장사업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데 야구단 운영으로 경영의 초점이 흐려질 수 있다”고 실토했다. 결국 당초 명분으로 내세운 ‘기업 이미지 제고’나 ‘사회적 책임 공유’는 사업성이라는 냉엄한 논리 앞에 맥을 추지 못하게 된 셈이다.

 KT가 본 사업성을 단적으로 반영한 금액이 바로 60억원이었다. 지난 연말 KT가 가입비 명목으로 60억원만 내고 한국야구위원회(KBO) 식구가 된다는 소식에 기존 구단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7개 구단 가운데 특히 서울 연고의 LG·두산이 두 손 들고 반대했다. 서울 연고권 취득 명목으로 54억원은 물론이고, 현대유니콘스가 지난해 진 부채 131억원도 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60억원은, 또한 시세가 급락하는 한국 프로야구단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금액이기도 했다. 현대유니콘스가 태평양에 430억원을 내고 KBO 멤버가 된 것이 1996년의 일. 물가상승을 고려치 않아도 10여 년 만에 시장가치가 7분의 1 정도로 쪼그라들었다는 계산이다. ‘다급한 KBO가 KT를 끌어들이려고 헐값을 제시했다’는 지적을 감안해도 너무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구단마다 매년 150억~200억원의 운영비를 꼬박꼬박 들이는 데 비해 반대급부는 손에 확 잡히지 않으니 당연한 귀결 아니냐는 중론이다.

 “수입 명세는 입장료를 포함해 30억원 정도가 고작이에요. 관련 회사들이 보태는 광고료 명목의 지원으로 적자를 메우지요. 광고·홍보 효과나 임직원의 사기 진작 효과가 크다고요? 창단 직후 한두 해 정도면 모를까 과연 연간 200억원 이상 효과를 꾸준히 낼까요?” 한 구단 대표의 이야기다. 국내 최고 인기 종목이라는 프로야구가 이 정도면 축구·농구 등 다른 스포츠 동네 사정은 뻔하다.

 미국·유럽의 프로 스포츠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숙명여대의 위경우 교수는 “구단 운영이 미국 메이저 리그나 영국 프리미어 리그처럼 돈 버는 비즈니스가 된다면 하겠다는 기업이 앞다퉈 몰려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시장이 좁고, 변변한 전용구장도 드물다. 김영수 LG트윈스 사장은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은 국내 사업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사회에 되돌린다는 기분으로 구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익만 바라고 구단을 운영하기 힘든 환경”이라고 털어놨다.

 KT처럼 나름의 적정가를 정해 구단을 인수하고, 투자한 만큼 스포츠마케팅 효과를 보겠다는 기업이 앞으로도 잇따를 전망이다.

 업계의 사업환경은 점점 빡빡해지고 주주나 사외이사들의 입김도 강해지는 추세다. KT의 일부 사외이사도 프로구단 인수에 극력 제동을 건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이 기꺼이 구단 운영을 택할 유인책을 많이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프로야구 같은 스포츠산업을 저절로 살리는 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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