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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안겨준 산엔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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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53년 뉴질랜드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에게 처음으로 등정을 허락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왼쪽 봉우리)의 위용. 오른쪽 봉우리가 로체(8516m)다. 점보 여객기 비행 고도 높이의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은 강력한 상층기류의 영향을 받아 수평으로 눈보라를 날려보내는 장면이 상징처럼 각인돼 있다.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산악인 엄홍길씨의 로체 원정대에 동행하며 촬영한 장면이다. [사진=김춘식 기자]

에드먼드 힐러리<左>와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 1953년 6월 26일 네팔 카트만두 주재 영국 대사관에서 에베레스트 세계 첫 등반을 기념하기 위해 등정 당시 입었던 옷차림으로 촬영했다. [AP=연합뉴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에 맨 처음 오르고도 가장 낮고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나이. 1953년 에베레스트산(해발 8848m)을 최초로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卿)이 11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88세.

 힐러리의 사망은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가 이날 직접 발표했다. 클라크 총리는 “스스로는 늘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전설과도 같은 탐험가였고 진정한 관용과 결단력을 가진 영웅이었다”고 추모했다.

 총리가 직접 나서서 힐러리의 타계를 전 세계에 알리고 애도하는 것은 그가 유명한 뉴질랜드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비행기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는 역경을 겪고도 “모험은 나처럼 평범한 모든 이에게 가능하다”고 모두에게 용기를 줬으며, 조용히 자신을 빛내준 셰르파(등반 안내인)들을 돕기 위해 뛴 박애주의자였다.

 1919년 오클랜드 인근 타우카우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뉴질랜드 공군으로 참전했다. 그 뒤 등반 교육을 받고 전문 산악인의 길을 걸었으며, 53년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선 영국 원정대의 일원이 됐다.

 그해 5월 29일 오전 6시30분. 힐러리와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닿았다. 그들의 등정 소식은 나흘 뒤 전 세계에 알려졌다. 마침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대관식 날이었다. 여왕은 그에게 기사 작위를 내렸다.

 하지만 힐러리와 노르게이 가운데 누가 먼저 정상에 발을 디뎠는지를 놓고 많은 이가 의혹을 제기했다. 정상에서 찍은 사진에는 노르게이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일한 증인인 노르게이도 침묵으로 일관하다 86년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고 힐러리가 굳이 ‘내가 세계 최초’라고 주장한 것도 아니다. 힐러리는 “노르게이와 나는 한 팀으로 정상에 올랐다”고 강조해 왔다. 영광을 노르게이와 함께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네팔의 셰르파들을 돕기 위한 ‘에드먼드 힐러리 히말라얀 트러스트 재단’을 설립하고 수백만 달러를 모금해 병원과 학교를 지었다. 평생 120차례나 네팔을 찾았다.

 평소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것은 탐험가로서의 명예가 아니라 네팔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에도 그의 탐험은 계속됐다. 65년까지 히말라야의 열 봉우리 등정을 마쳤고, 58년엔 개조한 트랙터를 타고 남극 원정에 나서 남극점을 밟았다. 85년에는 달에 첫발을 디딘 미국인 닐 암스트롱과 소형 비행기로 북극해를 가로질러 북극점에 닿기도 했다. 지난해 1월에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손자와 함께 남극을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

 “뛰어난 사람만 인생을 잘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동기다. 진정 무언가를 원한다면 온 맘을 다해라.” 늘 이야기하던 자신의 철학을 삶의 끝자락에서도 몸소 보여준 것이었다. 그가 75년 펴낸 자서전의 제목인 『모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Nothing Venture, Nothing Win)』는 이러한 그의 삶을 잘 요약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뜨며 남긴 바람은 “내가 좋아하는, 내 삶의 출발점인 고향 바다에 닿고 싶다”였다. 그래서 자신의 유골을 오클랜드 앞바다에 뿌려 달라고 부탁했다. 영광을 안겨준 산에는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인생 탐험을 마친 그가 남긴 가장 큰 흔적은 ‘에베레스트에 오른 첫 인간’이라는 기록이 아니라 ‘겸손과 관용’이라는 교훈이었다.

홍주희 기자 ,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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