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진짜냐 … 가짜냐 … 셰익스피어씨, 그것이 문제로군요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셰익스피어는 없다
버지니아 펠로스 지음
정탄 옮김,눈과마음
405쪽, 1만3000원

셰익스피어 사기극
패트리샤 피어스 지음
진영종·최명희 옮김,한울
392쪽, 1만8000원

배꼽 잡는 코미디 한 편을 소개한다. 18세기 후반 영국사회의 단면도다. 산업혁명으로 한창 자신감이 넘쳤던 그때, ‘대단한’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셰익스피어 마차 개’의 후손으로 소문난 개다. 물론 근거는 거의 없었다. 당시 내로라했던 배우가 장난 삼아 던진 말이 마치 사실처럼 퍼져나갔다.

셰익스피어(1564~1616)와 관련됐다면 부지깽이라도 보배로 평가 받는 시절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아마 무덤에서 뛰쳐나왔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을 팔아먹는 사기꾼들에게 독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나 좀 편하게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을 수도 있겠다.

셰익스피어는 지금도 샘이 마르지 않는 콘텐트다. 그를 경애하든, 폄훼하든 관련 서적·영화가 줄을 잇는다. 세계문학사에서 그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도 없을 것이다. 그의 희곡을 책으로 만들었던 문선공에 대한 연구도 있을 정도다. “셰익스피어를 소재로 재미없는 책을 쓰기는 불가능하다”는 말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없다』 『셰익스피어 사기극』 두 권의 책도 재미가 넘친다. 셰익스피어라는 ‘코끼리’의 코, 혹은 발만 건드리지만, 즉 셰익스피어에 대한 본격 연구서가 아니지만, 그게 오히려 일반 독자에게는 매력적이다. 영문학 강단에 갇힌 셰익스피어가 아닌 땅으로 내려온 셰익스피어를 얘기하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음흉한 냄새를 포착한 ‘소설’ 같은 책이다.

두 책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내용도 충격적이다.

우선 『셰익스피어는 없다』. 영어 원제는 ‘셰익스피어 코드’다.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가 즉각 떠오른다. 스타 예술가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방식도 비슷하다. 다만 사실과 허구가 맛있게 섞인 『다빈치 코드』와 달리 『셰익스피어는 없다』는 ‘팩트’ 자체를 내세운다.

이 책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없었다’고 단언한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인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이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썼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국 촌구석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던 셰익스피어가 역사·신화·궁정·문학 등 온갖 것에 능통하고, 또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작품을 도저히 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고금의 자료를 비교한 저자는 당대 최고 석학이었던 베이컨만이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고 못을 박는다.

사실 이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조작된 인물”이라는 ‘설(說)’은 200년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근거 또한 이 책에 나타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7월 영국 유명 배우·연출가 287명은 같은 맥락의 ‘합리적 의심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셰익스피어는 없다』는 영국 경험철학을 개척한 베이컨의 숨겨진 일생을 들춰낸 평전과 같다. 특히 베이컨은 절대왕정을 구축한 엘리자베스 1세의 사생아라고 주장한다. 베이컨이 귀족집안에 양자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책은 신비에 쌓인 베이컨의 파란만장한 삶을 하나하나 들춰나간다. 그러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하나씩 짚어가며 베이컨이 ‘진짜 셰익스피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예컨대 『햄릿』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왕자’라는 출신을 감춘 채(실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음에도) ‘두 얼굴의 사나이’로 살아야 했던 베이컨의 절규라고 해석한다. 평생 ‘처녀여왕’으로 군림했던 엘리자베스 앞에서 숨을 죽여야 했던 베이컨이 가난한 연극배우 ‘윌 샥스퍼’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욕망과 좌절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단, 이 주장은 아직 ‘다수설’이 아니다. 정통 영문학계에선 ‘변방의 목소리’로 통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치하 영국사회의 파워게임·정략결혼·귀족생활·생활풍속 등을 퍼즐 맞추듯 풀어놓는 이 책의 ‘성취’를 느긋하게 따라가는 재미는 쏠쏠하다. 정사(正史)보다 야사(野史)의 즐거움에 가깝지만 ‘가짜 셰익스피어’를 잉태한 400여 년 전 영국에 대한 묘사와 분석은 현재 우리 사회의 욕망과 갈등을 돌아보는 데 모자람이 없다.

『셰익스피어 사기극』은 말 그대로 사기에 집중한다. 18세기 후반 영국을 뒤집었던 희대의 위조사건을 다룬다. 당대에 광풍처럼 일었던 ‘셰익스피어 숭배’의 앞과 뒤를 잘근잘근 해부한다. 사기극의 주범은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1777~1835)다. 골동품 수집광인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셰익스피어 관련 물품을 줄줄이 위조했던 아일랜드를 통해 시대의 광기와 무지를 질타한다. 지난해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신정아 사건마저 연상된다.

아일랜드가 위조한 품목은 다양했다. 셰익스피어의 봉인·편지·거래서·영수증·희곡·초상화 등등, 그 기발한 재주와 위장술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게다가 날고 긴다는 학자와 전문가, 그리고 언론마저 속아 넘어가는 모양새가 잘 짜인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18세기 버전이랄까. “정말, 이럴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절로 든다.

두 책에서 굳이 교집합을 찾자면 가짜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절대왕정(셰익스피어는 없다)이 틀을 잡고, 대영제국(셰익스피어 사기극)이 무르익은 시절의 영국, 그 안에선 허욕·위선이라는 독소가 ‘거짓말’을 키우고 있었다. 가짜·위조는 결국 시대적 허영의 부산물일 뿐이다. 지금, 여기 한국의 가짜는 뭘까.

박정호 기자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