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2차 금융빅뱅] 살아남기 위한 자발적 '짝짓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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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와 함께 제2차 금융빅뱅의 막이 올랐다. 1차 빅뱅이 부실을 벗기 위한 '관제(官製)' 구조조정이었다면 2차 빅뱅은 살아남기 위한 금융회사 간의 자율적인 이합집산이다. 더욱이 이번에는 세계 최대 상업은행인 씨티그룹이 뛰어든 데다 다른 외국은행도 가세할 태세다.

1차 빅뱅이 은행 간 합병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2차 빅뱅은 은행 간 합병뿐 아니라 증권.투신.카드.보험 등이 지주회사의 우산 아래 통합되는 복합적인 결합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서비스의 질도 한 단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연구원 한상일 박사는 "씨티은행이 국내 금융시장의 판도를 바꾸면서 국내은행도 선진 금융기법을 앞다퉈 도입할 것"이라며 "금융빅뱅이 금융서비스 혁신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정부도 규제와 정책을 시급히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권 다시 합병 바람=올해 중 우리금융지주의 정부 지분이 시장에 나오고 뉴브리지캐피털이 인수한 제일은행도 지분 매각에 걸린 족쇄가 풀려 언제든 매물로 나올 수 있다. 외환은행은 내년에 지분 매각 제한이 풀린다.

우리은행 이덕훈 행장은 "기회가 온다면 제일.외환은행 인수에 나설 뜻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도 자산을 300조원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2006년으로 예정된 신한.조흥은행의 통합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제일.외환은행 인수전에는 이번 한미은행 인수전에서 밀려난 스탠더드 차터드나 HSBC까지 가세할 가능성이 크다.

외국계 은행이 주된 공략 대상으로 삼는 부자 고객 영업에 타격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제2금융권도 빅뱅 회오리=씨티은행은 23일 기자회견장에서 카드사업을 확대할 계획이 있다고 밝혀 카드사 인수에 나설 뜻을 내비친 바 있다.

국내시장에서 본격적인 영업을 하기 위해선 씨티.한미은행의 카드사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카드업계도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씨티.한미은행은 증권.투신사나 방카슈랑스(은행.보험의 겸업)를 위한 보험사 인수에도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국내 은행들도 증권.투신.보험사를 인수하거나 합병해 덩치를 키울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현재 추진 중인 한투.대투.대우증권.LG증권과 LG카드의 매각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복합화가 대세=국내 은행이 씨티은행 같은 세계적인 금융회사와 대적하기 위해선 카드.증권.보험사 등을 아우르는 조직을 갖추고 복합 금융상품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금융회사가 대부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복합 금융상품 개발과 한 창구에서 여러 가지 금융상품을 파는 교차판매로 승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우리은행은 이미 지주회사로 탈바꿈했다. 하나은행도 카드.증권.보험사를 인수해 내년 지주회사로 전환할 계획이고 국민은행도 조만간 지주회사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국내 4대 은행이 모두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게 된다.

정경민.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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